고대사

시나이 상공의 굴욕, 소련 공군을 격파한 이스라엘의 '리몬 20 작전'

시나이 상공의 굴욕, 소련 공군을 격파한 이스라엘의  리몬 20 작전

나세르의 모스크바 방문과 소련의 개입

1970년 1월 24일, 이집트 대통령 가말 압델 나세르가 모스크바를 찾았다. 소련은 그 이전부터 이른바 '소모전'에서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싸우도록 지원해 왔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당한 참패를 좁처받기를 거부했던 이집트였다.

나세르의 모스크바 접촉 결과에 따라 소련은 항공사단 하나 통째로 이집트에 파견했다. 이 사단에는 미그-21 전투기 여단은 물론 대공미사일과 레이더 부대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중동 최초의 SA-3 미사일 배치

소련은 중동 지역에서 처음으로 SA-3 미사일을 배치하고 카이로, 알렉산드리아, 아스완 댐 상공에 대한 방공 엄호를 맡았다. 덕분에 이집트 조종사들은 이스라엘 공군 격파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

뒤늦게 소련군의 존재를 알아챈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소련군의 도착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다. 2월 말에야 그들의 존재를 파악하게 되었고, 경고의 의미로 소련 미사일 진지를 공격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소련과 정면으로 충돌할 생각이 없었기에 이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신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 내 이집트군 진지로 추정되는 목표물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그러나 4월 13일, 미그-21 전투기들이 이 지역에서 이스라엘 F-4 팬텀을 요격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소식은 이집트군의 사기를 크게 고무시켰다. 이어 4월 25일에는 이집트 Il-28 폭격기 두 대가 이스라엘 진지를 폭격했지만, 두 대 모두 격추당했다.

사흘 뒤에는 이집트 수-7 두 대가 격추되는 수난을 겪었다. 6월 30일에는 SA-2 미사일에 의해 이스라엘 F-4 두 대가 격추되었고, 7월 5일에는 같은 미사일에 팬텀 한 대가 추가로 떨어졌다. 소련이 이집트 방공망을 직접 구축해 놓았음은 더 이상 분명한 사실이었다.

격화되는 피해, 그리고 보복 작전 준비

소련의 즉각적인 개입에 대응하여 미국은 이스라엘에 전자전(ECM) 장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4 두 대가 추가로 SA-3 미사일에 피탄되었다. 한 대는 추락했고, 다른 한 대는 심하게 손상된 채 기지로 귀환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련 조종사가 조종하는 미그-21이 AA-2 미사일로 이스라엘 A-4 스카이호크를 격추하는 사태까지 벌어지자, 이스라엘은 보복 작전 '리몬 20(Rimon 20)'을 계획하기에 이르렀다.

1970년 7월 30일, 리몬 20 작전 개시

이날 이스라엘 최정예 조종사들이 미라주 III 12대와 F-4 4대를 이끌고 시나이 상공으로 출격했다. 이 가운데 미라주 III 4대는 미끼 역할을 맡았다. 소련측은 미끼에 걸려 미그-21 전투기들로 공격에 나섰다.

공중전의 전개

아브라함 살몬이 탑승한 미라주 III가 선제공격에 나서 자신의 바로 앞에 있던 첫 미그를 성공적으로 명중시켰다. 이어 그는 이스라엘 F-4들을 추격하던 두 대의 미그를 향해 기수를 돌렸다. 적기의 '꼬리' 뒤에서 접근한 그는 AIM-9D 사이드와인더 미사일로 소련 조종사 니콜라이 유르첸코의 미그를 격추했고, 유르첸코는 전사했다.

같은 시각 아셰르 스니르 역시 AIM-9D 미사일로 비행대장 예브게니 야코블레프의 미그를 격추했으나, 야코블레프는 간신히 탈출에 성공했다. 직후 스니르의 기체는 소련 AA-2 미사일에 피탄되어 기지로 귀환해야만 했다.

한편 아비엠 셀라는 팬텀을 추격하는 미그 한 대를 포착했다. 그는 고전적인 '임멜만' 기동으로 적 전투기의 후방을 확보한 뒤 AIM-9D 미사일로 격추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희생자는 비행대장 게오르기 시크린이었다.

아비후 벤 눈의 팬텀 역시 AIM-7 스패로우 미사일로 또 한 대의 미그를 격추했다. 마지막으로 두 대의 미라주가 블라디미르 주랄료프가 조종하는 미그를 공격했다. 소련기는 미사일에 피탄되었으나 곧바로 격추되지는 않았다. 결국 살몬이 기관포 탄약을 전부 퍼부었고, 연료가 바닥난 이스라엘기가 전장을 이탈하자 소련기는 추락해 조종사가 사망했다.

압도적인 승리와 여파

이스라엘은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총 다섯 대의 미그-21이 격추된 반면, 이스라엘은 단 한 대의 항공기도 잃지 않았다. 세 대는 미라주가, 두 대는 F-4가 격추한 것이며, 이스라엘 측에서 손상을 입은 것은 한 대의 미라주가 전부였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때까지 소련 동료들에게 오만한 대접을 받아오던 이집트 조종사들조차 이 결과를 후련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8월 3일, 이스라엘은 SA-3 미사일에 F-4 한 대를 추가로 잃었고, 또 다른 한 대도 크게 손상되었다. 그럼에도 소련의 패배는 결국 8월 7일 적대 행위의 중단으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