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97세 참전용사가 다시 펼친 낙하산… "내일이라도 또 뛰겠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97세 참전용사가 다시 펼친 낙하산…  내일이라도 또 뛰겠다

그는 오랫동안 전쟁 중 자신이 남긴 폐허를 프랑스인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을 맞은 이날, 97세의 톰 라이스(Tom Rice)는 1944년 6월 6일에 했던 그 낙하산 강하를 군중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서 다시 재현했다.

"비행도 좋았고, 강하도 좋았어요. 모든 게 완벽했습니다." 미 육군 제101공수사단 출신의 전직 공수부대원은 카랑탕(Carentan) 북쪽 들판에 착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국 국기 문양의 낙하산을 등에 지고 부대 헬멧과 검은 선글라스를 쓴 그는 모여든 열광적인 구경꾼들을 향해 승리의 V 사인을 보냈다.

75년 전 그날의 기억

정확히 75년 전, 22세였던 라이스는 영국에서 더글러스 C-47 수송기에 올랐다. 한밤중 그는 9천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노르망디 코탕탱 반도 상공으로 뛰어내렸다. 당시 50kg에 달하는 장비를 메고 비행기의 빠른 속도에 휩쓸려 기체에 몇 분간 매달렸지만, 결국 부상을 입으면서도 강하에 성공했다.

제101공수사단의 임무는 유타 해변과 오마하 해변 사이에 위치한 카랑탕 일대의 도로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새벽이 되면 수천 명의 연합군 병력이 이곳에 상륙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톰 라이스는 동료들과 함께 카랑탕 운하의 바르케트 수문에 진지를 구축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임무를 완수했다

그날 이후, 훗날 역사 교사가 된 그는 약 60회의 낙하산 강하를 경험했고, 지난 6년간은 매년 6월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D-Day)을 기념하기 위해 하늘로 뛰어왔다. 마지막 강하를 지켜본 아내 브렌다는 "남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희생한 모든 이들을 위해 뛰는 것이며,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스는 199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50주년을 맞아 다시 노르망디 하늘에 떴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프랑스인들이 자신의 방문에 어떻게 반응할지 두려움에 떨었다고 한다.

용서받지 못할 것 같았던 마음

"카랑탕 사람들은 도시가 파괴되고 가족을 잃은 것에 대해 우리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2004년 저서 『트라이얼 바이 컴뱃(Trial by Combat)』에 이렇게 적었다.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우리는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사람들이 죽었고, 포격으로 인한 피해와 깨진 유리창들이 곳곳에 있었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지난해 카랑탕 시장 장피에르 로네(Jean-Pierre Lhonneur)는 노르망디에서 그를 직접 맞이한 뒤, 이미 오래전부터 모든 것이 용서되었다는 내용의 서한까지 보냈다. 로네 시장은 "모든 참전 용사들이 '우리가 당신네 나라를 파괴했습니다'라고 사과합니다. 우리가 활짝 팔 벌려 맞아주면 늘 놀라하죠"라고 말했다.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믿기지가 않습니다." 라이스는 정말 놀란 듯 입을 열었다. 그는 이어 "프랑스 사람들은 우리에게 너무나 친절하고 따뜻한 분들입니다. 대부분에게 우리는 가족 같은 존재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다시 스카이다이빙을 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97세의 노병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내일이라도 다시 뛰겠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 97세 참전용사가 다시 펼친 낙하산…  내일이라도 또 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