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의 냉혹한 거래
처음에는 양측 모두에게 이익을 안겨준 냉혹한 계산에서 출발한 움직임이었습니다. 폴란드 침공을 준비하던 히틀러는 당시 소련의 중립을 확보하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을 패망으로 몰아넣었던 양면전쟁을 피하고자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조건 속에서 80년 전인 8월 23일, 히틀러와 스탈린은 독소 불가침 조약(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공식 조약문이 아니라 별도의 비밀 의정서에 있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난
비밀 의정서는 영토 재조정이 이루어질 경우 독일과 소련 사이에 위치한 국가들이 양국의 세력권으로 분할될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폴란드 동부, 루마니아의 베사라비아는 소련 세력권으로, 폴란드 서부는 독일 세력권으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1939년 9월 1일, 독일 국방군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의 막이 올랐습니다. 두 주 뒤에는 소련 붉은 군대도 폴란드 동부를 침공해 소련 세력권에 속한 지역들을 하나씩 점령해 나갔습니다. 동유럽 전체의 분할은 전쟁 발발 후 단 두 주 만에 완성되었고, 독일과 소련의 군사·첩보·행정 당국자들은 매우 긴밀하게 협력했습니다.
폴란드는 정치 지도에서 두 번째로 사라졌습니다.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독립을 쟁취한 발트 3국은 소련 공화국으로 편입되었고, 루마니아의 베사라비아는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공화국에 흡수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루마니아는 나치 독일의 품으로 빠져들었다"고 루마니아 역사학자 코즈민 포파는 말합니다.
분할선 양쪽에 살던 주민들에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의 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히틀러는 점령지에 자신의 인종주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며 수백만 명의 학살을 명령했고, 소련 세력권에서도 주민 대다수가 추방당했으며 구 엘리트 출신 수천 명이 살해되거나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독소 불가침 조약은 약 2년간 지속되었습니다. 1941년 6월, 유럽의 절반이 이미 나치의 지배 아래 놓여 있던 시점에 히틀러는 자신의 힘을 과대평가한 채 동맹국인 소련마저 공격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나 이 선택은 운명적이었습니다. 이듬해 겨울부터 역사의 흐름이 바뀌면서 독일은 군사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만 점령된 유럽의 민중들에게는 극심한 궁핍, 추방, 학살의 세월이 몇 년 더 이어져야 했습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상처
다른 나라들에 막대한 대가를 지운 독·러 협력의 트라우마는 오늘날까지도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폴란드에서는 히틀러-스탈린 조약이 18세기 러시아·프로이센·오스트리아에 의해 영토가 분할되어 지도에서 사라졌던 세 차례의 분할에 이은 '네 번째 분할'로 간주됩니다. 또한 소련의 침공으로 2만 2천 명의 폴란드 장교와 경찰이 체포되었습니다.
1940년 봄, 소련 비밀경찰은 이들을 카틴을 비롯한 세 곳으로 끌고 가 머리에 총구를 겨눠 처형했습니다. 이 조약의 영향은 전쟁이 끝난 뒤에도 이어졌습니다. 소련이 전쟁의 승전국였던 탓에 서방 열강은 비밀 의정서에 포함된 국가들이 소련 세력권에 계속 머무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조약은 잊혀져 갔습니다. 냉전 시기 동유럽에서는 금기시되었고, 서독에서도 전후 역사 청산 과정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상처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폴란드 국민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거래를 부도덕한 것으로 규정했지만, 그 입장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러시아의 크림 반도 합병 몇 달 뒤, 푸틴은 이 조약을 당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며 옹호하는 입장으로 선회했습니다. 오늘날 러시아에서 스탈린은 역사적으로 재평가되었고, 실제로 최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0%가 스탈린의 역할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폴란드와 발트 3국은 자신들이 다시 정치적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러시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노르트 스트림 2' 건설입니다. 역사학자 요르크 감첸뮐러는 "오늘날 역사적 유비를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며 "그 두려움은 과장된 것이다. 폴란드와 발트 3국은 러시아보다 독일에 더 가깝다. NATO와 EU 참여가 그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그는 독일 외교가 이러한 우려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독일 정부가 우려가 표명될 때 더 많은 이해를 보여줄 것을 권고합니다.
출처: D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