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치 독일에 대한 소련의 승전 75주년 기념 열병식이 2020년 6월 24일,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수천 명의 병사가 행진에 참여한 이 행사는 러시아의 국경일인 '승전일(5월 9일)'을 대신해 연기된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붉은군대와 수백만 명의 소련 군인들, 그리고 전쟁의 향방을 가른 전장에서 흘린 처참한 희생을 기리며 국가적 자긍심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그러나 이 화려한 승리의 서사 뒤에는 오랫동안 공식 역사에서 지워지거나 축소되어 온 어두운 진실이 숨어 있다. 소련은 전쟁에서 가장 막대한 인명 피해를 기록했으며, 동시에 체제 내부의 억압 또한 엄청난 희생자를 남겼다.
700만에서 2,660만까지, 계속 늘어난 전사자 수
1946년 스탈린은 '위대한 조국전쟁' 전장에서 소련군 사망자가 700만 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최고사령관으로서 자신의 권위와 이미지를 지키기 위해 크게 축소한 수치였다. 스탈린 사후 니키타 흐루쇼프는 전사자 수를 약 2,000만 명으로 상향하며, 그 막대한 희생의 원인이 스탈린의 무능한 지휘에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후 미하일 고르바초프 시절에 이르러 소련 당국이 전쟁 관련 기록 보관소를 공개하면서 수치는 다시 한번 수정되었다. 최종 집계된 소련의 전쟁 사망자는 총 2,660만 명으로, 이 가운데 군인이 약 1,200만 명, 민간인이 약 1,460만 명에 달했다. 레닌그라드 포위전 중 발생한 기근만으로 최대 100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는 소련군 측에서만 100만 명 이상이 전사했다.
'스탈린의 사모바르'라 불린 장애 참전용사들
전후 소련에서는 특유의 생김새 때문에 '사모바르'(러시아식 정수기)라는 단어가 신랄한 풍자로 사용되었다. 스탈린의 명령 아래 싸우다 팔다리를 잃고 돌아온 참전용사들을 가리키는 표현이었다. 전쟁은 약 250만 명의 장애인을 남겼고, 이들 가운데 수십만 명은 적절한 보호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거지 생활로 내몰리며 소련 지도부에 분노를 터뜨렸다.
1948년 당국은 이들의 존재가 소련의 이미지를 실추시킨다고 판단하고, 소련 북부에 있는 폐허가 된 수도원들을 요양원으로 개조해 수천 명을 강제 수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시설들은 점차 확산되어 거지, 장애인, 소외 계층 등 '소련의 이미지를 더럽히는 사람들'을 구금하는 비자발적 수용소로 변질되었으며, 일부 시설은 1970년대까지 운영되었다.
처형, 탈영, 그리고 적과의 협력
군사법원에 회부되어 유죄 판결을 받은 소련인은 253만 명을 넘었으며, 이 중 탈영병과 불복종자가 143만 명에 달했다. 1941년부터 1945년 사이에는 간첩 혐의, 반역죄, 탈영, 심지어 '패배주의' 혐의로만 15만 7,593명이 처형되었다.
한편 나치 점령 하에 놓인 소련 영토와 발트 3국 등 강제 편입 지역에는 약 8,000만 명의 주민이 살았다. 러시아 연방군 군사아카데미의 역사학자 빅토르 가브릴로프에 따르면, 독일군 측에서 복무한 사람은 총 124만 명으로, 러시아인 40만 명, 우크라이나인 25만 명, 라트비아인 15만 명, 에스토니아인 9만 명, 벨라루스인 7만 명 등이 포함된다.
협력자로 몰려 강제 이주당한 민족들
1941~1942년 스탈린은 '잠재적 협력자'로 의심되는 소수민족에 대한 선제적 추방을 결정했다. 그 첫 번째 대상은 볼가 강 유역에 살던 러시아계 독일인으로, 80만 명이 마을에서 쫓겨나 가축 수송용 화물차에 실려 카자흐스탄으로 이주당했다. 이어 핀란드계, 그리스계 주민들도 같은 운명을 겪었다.
1943~1944년, 독일군을 몰아낸 뒤에는 체첸인, 잉구시인, 크림 타타르인 등 다른 민족들이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시베리아의 척박한 초원으로 대거 추방되었다. 불과 몇 달 사이 약 120만 명이 생존 수단조차 없이 소련 제국의 반대편 끝으로 내몰린 것이다.
이들 민족은 대개 적과의 협력 혐의를 들었지만, 그 증거가 제시된 경우는 드물었다. 소련 지도부에게 이는 강한 민족주의 정서를 꺾고 광활한 미개척지에 인구를 재배치할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스탈린 사후 이들 민족은 명예를 회복했으나, 그 상처는 오래도록 남았다.
출처: APE-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