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울 공작 제라르 크리스토프 미셸 뒤로크
생몰: 1772년 10월 25일, 폰타무송(Pont-à-Mousson) 출생 ~ 1813년 5월 23일, 괼를리츠(Görlitz) 인근 니더마커스도르프(Niedermackersdorf) 별세

- 뒤로크 초상화
귀족 출신의 젊은 장교, 보나파르트의 부관이 되다
귀족 가문 출신인 뒤로크(Duroc)는 1793년 샬롱(Châlons) 군사학교를 소위 계급으로 졸업하며 군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탈리아 방면군에 파견된 그는 그곳에서 보나파르트의 부관(副官)으로 발탁되었고, 대대장으로 승진하여 이집트 원정까지 함께하게 됩니다.
이집트에서 뒤로크는 여러 차례 탁월한 활약을 펼쳤는데, 특히 아크레 공성전에서는 중상을 입으면서도 눈부신 용맹을 보여주었습니다. 무이론(Muiron) 호를 타고 보나파르트와 함께 귀국한 그는 집정관 정부 시절에도 부관직을 계속 맡았으며, 준장으로 승진했습니다. 이 무렵부터 뒤로크는 문자 그대로 보나파르트의 '그림자'와도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제국의 핵심 신료이자 현역 지휘관
1804년 제국이 선포되자 뒤로크는 황궁 총괄, 황실 고위 관료, 그리고 궁내원수(grand maréchal du palais)에 임명되어 황제 곁의 최측근으로서 막중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궁정 직책에도 불구하고 그는 군사적 임무를 계속 수행했습니다. 오스트리츠 전투에서는 부상당한 우디노(Oudinot)를 대신하여 근위 척탄병 부대를 지휘했고, 에슬링(Aspern-Essling) 전투에서는 전세를 뒤집는 결정적인 포병 집중 운용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뒤로크는 외교 분야에서도 재능을 발휘하여 여러 중요한 조약의 협상을 담당했습니다. 1808년에는 프리울 공작(Duc de Frioul) 작위를 받게 됩니다.
비극적 최후와 남겨진 유산
1813년, 독일 전역 중이던 뒤로크는 실레시아(Silesia) 지방의 뷔르셴(Würschen) 근처에서 적포탄에 다리를 으스러뜨리고 전사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의 유해를 파리 앵발리드(Les Invalides)로 옮길 것을 명령했지만, 여러 사정으로 이 명령은 1847년 5월 5일에야 비로소 실행되었습니다.
뒤로크가 사망한 다음 날, 나폴레옹은 황후 마리루이즈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프리울 공작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그는 스무 해 동안 나의 친구였다. 한 번도 그를 원망할 일이 없었으며, 언제나 나에게 위로가 되는 모습만 보여주었다. 이는 기약할 길 없는 상실이며, 군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손실이다."
뒤로크의 이름은 지금도 에투알 개선문(Arc de Triomphe de l'Étoile)에 새겨져 있어, 나폴레옹 전쟁 시대의 명장이자 충신으로서의 그의 삶을 기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