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왕을 잡으러 온 독일 낙하산 부대, 미츠코겐에서 좌절하다

왕을 잡으러 온 독일 낙하산 부대, 미츠코겐에서 좌절하다

노르웨이 침공과 왕 실종

1940년 4월 9일, 나치 독일은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기습 공격했습니다. 독일군은 노르웨이 여러 지점에서 동시에 상륙 및 공수 작전을 개시했으며, 스칸디나비아 소국의 군주인 하콘 7세 국왕의 생포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습니다. 독일 지도부는 국왕만 손에 넣으면 노르웨이는 즉각 항복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슬로 방면의 침공은 초기부터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이 덕분에 노르웨이 왕실과 정부는 철수할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엘베룸(Elverum) 시로 피신할 수 있었습니다.

국왕을 쫓는 정예 낙하산 부대

국왕 추격 작전을 맡은 것은 스피일러(Spieler) 소령이 지휘하는 독일 낙하산병 정예 중대였습니다. 그는 이전에 주오슬로 독일 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어 노르웨이의 지리와 인물에 밝은 인물이었습니다.

약 120명의 잘 무장된 낙하산병들은 버려진 노르웨이 육군의 버스와 차량을 타고 국왕 일행을 추격했습니다. 반면 국왕을 호위하는 병력은 제1근위중대 소속 단 30명의 근위대 하나 소대뿐이었습니다.

미츠코겐의 방어선

국왕과 정부 요인들이 엘베룸 근처에 도착했을 때, 독일군의 진격을 막아 도주 시간을 벌자는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근위대 외에도 자원봉사자들, 몇몇 병사, 그리고 지역 사격 동호회 회원들이 올라프 헬센(Olaf Helsen) 소령의 지휘 아래 모여들었습니다.

노르웨이 측의 무장은 빈약했습니다. 소총과 구식 콜트 M/29 기관총 2정(수랭식 브라우닝 M1917 개량형)이 전부였습니다. 그들은 미츠코겐(Midtskogen) 마을의 한 농장 근처에서 도로를 차단하기로 했습니다. 적 차량이라도 파괴해서 추격 속도를 늦추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노르웨이군은 구할 수 있는 모든 차량으로 도로를 봉쇄하고, 기관총을 도로를 따라 화망을 형성하도록 배치했습니다. 소총수들은 도로 양쪽에 흩어져 매복했습니다.

한밤중의 교전

1940년 4월 10일 새벽 2시경, 독일군 차량들이 바리케이드 앞에 다다랐습니다. 차량을 뒤집을 수 없었던 그들은 멈춰 섰지만, 노르웨이군이 예상했던 지점보다 다소 먼 곳에서 멈췄습니다. 노르웨이군이 새로운 전투 위치를 잡으려는 순간, 정예 독일군의 집중 사격이 쏟아졌습니다.

곧 농가가 독일군의 예광탄에 불붙었습니다. 밤을 밝히는 화염은 오히려 노르웨이 수비대의 위치를 드러냈고, 독일군은 강화된 사격을 퍼부었습니다. 전투가 예상보다 먼 거리에서 시작된 탓에 두 정의 기관총은 제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독일군이 다시 접근했을 때는 냉각수가 어는 바람에 기관총이 '먹통'이 되었습니다. 수비대는 총을 녹이느라 애를 썼고, 겨우 한 정을 가동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기관총의 화망이 독일군의 진격을 저지했고, 이 덕분에 노르웨이 소총수들은 원래 위치로 후퇴할 수 있었습니다. 약 1시간 후, 스피일러 소령은 치명상을 입었고 부하들은 추격을 포기한 채 패배하여 물러났습니다.

노르웨이 일행은 행군을 계속해 사크스튜엔(Sagstuen)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마찬가지로 탈출에 성한 병력들의 증원을 받았습니다.

전투의 결과

독일군은 전사자를 단 5명만 인정했는데, 이는 소규모 피해만 발표하는 그들의 관행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사자 중에는 지휘관 스피일러 소령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부상자 수는 끝내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90명이 싸운 노르웨이 측의 피해는 부상 3명(1명은 중상)에 그쳤습니다.

이 소규모 교전이 하콘 7세 국왕의 운명을 구했습니다. 다음 날 독일군은 엘베룸 마을을 폭격해 국왕을 제거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왕의 마지막 선택

국왕은 불과 16km 거리의 스웨덴 국경 통과를 타진했지만, 스웨덴 측은 "국경을 넘으면 체포하겠다"는 답변을 보냈습니다. 분노한 하콘 7세는 내통자 비드쿤 크비슬링(Quisling)의 '정부'를 승인하기를 거부했고, 마침내 6월 7일 영국 순양함에 올라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이후 그는 망명 정부를 이끌며 점령 기간 내내 노르웨이 저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 본문의 영상은 이 전투를 다룬 2016년 노르웨이 영화의 발췌 장면입니다.


왕을 잡으러 온 독일 낙하산 부대, 미츠코겐에서 좌절하다

영국으로 향하는 국왕과 그의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