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로마의 삼두정이란? 제1차·제2차 삼두정의 결성과 붕괴

로마의 삼두정이란 무엇인가?

로마의 삼두정(三頭政)은 로마 공화정 말기에 세 명의 실력자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결성한 정치 동맹입니다. 역사적으로 제1차 삼두정과 제2차 삼두정으로 나뉘며, 두 동맹 모두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제1차 삼두정: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기원전 60년, 율리우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대왕,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는 서로의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손을 잡았습니다. 이 동맹의 첫 번째 목표는 카이사르의 집정관 선거 지원이었고, 그 결과 카이사르는 기원전 59년 집정관에 당선되었습니다.

집정관 임기를 마친 카이사르는 키살피나 갈리아와 트란살피나 갈리아의 총독직을 얻었고, 이 직위를 발판 삼아 갈리아의 대부분을 정복했습니다. 다른 두 사람도 동맹에서 몫을 얻었습니다. 폼페이우스는 지중해 전역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했으며, 크라수스는 로마 최고의 부호로서의 지위를 더욱 굳건히 했습니다.

동맹의 붕괴와 로마 내전

그러나 기원전 54년, 크라수스가 파르티아와의 전투에서 전사하면서 제1차 삼두정은 붕괴되었습니다. 남은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는 로마 공화정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 관계로 돌변했습니다. 긴장이 극에 달한 기원전 49년, 카이사르는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했고, 이로써 로마 내전이 시작되었습니다.

기원전 48년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패배한 폼페이우스는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암살당했습니다. 승리한 카이사르는 로마의 독재관으로 추대되어 통치했으나, 기원전 44년 암살되면서 생을 마감합니다.

제2차 삼두정: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카이사르 암살 이후인 기원전 43년, 그의 양자인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가 제2차 삼두정을 결성했습니다. 이들의 목표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죽음에 대한 복수와 그를 살해한 자들의 응징이었습니다.

삼두정 세력은 공적 숙청(프로스크립티오)을 통해 적대 세력을 처형했는데, 저명한 웅변가 키케로도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한 로마 영토를 셋으로 나누어, 옥타비아누스는 서부와 북아프리카 일부를, 안토니우스는 동부를, 레피두스는 아프리카를 각각 담당하는 분할 통치를 시행했습니다.

삼두정의 종언과 제정의 탄생

동맹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기원전 33년 삼두정의 임기가 만료되면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대립이 표면화되었고, 결국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격파하며 승부가 갈렸습니다. 이후 옥타비아누스는 로마의 단독 통치자가 되었고, 로마는 공화정을 마무리하고 제정 시대로 새롭게 출발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