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

중세에도 치과의사가 있었나요? '발치사'로 불리던 중세 치과 의료의 실체

네, 중세에도 분명히 치과의사는 존재했습니다. 다만 오늘날처럼 체계화된 전문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서 치과 치료는 주로 '발치사(tooth drawer)' 또는 '치아 장수(toothsmith)'라고 불리던 떠돌이 상인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정식 훈련 없이 일했던 떠돌이 치과의사

이들은 정규 교육이나 면허 없이,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 지식과 경험적 기술에 의존해 치과 질환을 다루었습니다. 현대와 달리 충치를 치료하거나 치아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치아를 뽑아버리는 발치(拔齒)가 치료의 핵심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정제된 설탕이 보편화되지 않아 충치 자체는 오늘날보다 덜 흔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치통이 시작되면 그 고통은 극심했고, 마취나 진통 기술이 부족했던 시대 특성상 발치만이 유일하고 확실한 해결책으로 여겨졌습니다.

거친 도구와 원시적인 마취 방법

중세의 치과 종사자들은 집게(forceps)와 지렛대(lever) 같은 도구를 사용해 치아를 뽑았습니다. 통증을 줄이기 위해 허브 혼합물이나 알코올을 발치 부위 주변에 발라 일종의 마취 효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러한 치과 의료 서비스는 누구나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부분 상류층이나 치료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소수 계층만이 혜택을 볼 수 있었고, 일반 민중은 스스로 치아를 뽑거나 방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세 최고의 외과의, 기 드 숄리악

중세를 대표하는 치과 관련 인물로는 14세기 프랑스의 의사 기 드 숄리악(Guy de Chauliac)을 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여러 의학 저술을 남겼는데, 그중에는 치과의학을 다룬 논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저작에는 치아 발치 기술, 충치 치료법, 나아가 빠진 치아를 대체하는 방법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 치과 의료 수준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습니다.

근대 치과의학으로 가기까지

이렇게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던 치과 의료는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큰 발전을 거듭합니다. 과학적 연구와 전문 교육이 도입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인 치과 진료와 치료 기술의 기틀이 마련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