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빅스의 무덤: 고대 최대의 크라테르가 잠든 켈트 공주의 안식처

빅스의 무덤: 고대 최대의 크라테르가 잠든 켈트 공주의 안식처
빅스의 무덤(Tomb of Vix)은 1953년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 할슈타트 문명의 대표적인 제후 거주지였던 몽 라수아(Mont Lassois) 산기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빅스 무덤의 보물은 기원전 5세기에 몽 라수아 오피둠(요새화된 정착지)에 살았던 한 켈트 공주의 것이며, 이 지역은 콘월에서 지중해로 이어지는 주석 무역로 덕분에 크게 번성했습니다. 부장품의 중심에는 높이 1.64m에 달하는 청동 나선형 손잡이 크라테르(volute krater)가 있는데, 이는 고대가 남긴 최대 규모의 청동 그릇입니다. 이 발견은 로마 정복 이전 수백 년 전부터 갈리아 중심부와 지중해 세계를 연결하는 교류가 존재했음을 입증하는 증거입니다.

'빅스의 여인'의 무덤

1953년 초, 몽 라수아 산에서 화려한 무덤이 발견되었고, 곧 '빅스의 보물(Trésor de Vix)'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몽 라수아 오피둠(코트도르 주)은 센 강 발원지에서 약 50km 떨어진 샤티용쉬르센(Châtillon-sur-Seine) 인근에 위치합니다. 이 유적 동쪽 지역에서 모리스 무아송(Maurice Moisson)이 이끄는 지역 고고학회가 기원전 5세기 초에 매장된 젊은 여성의 무덤을 발굴했습니다.

약 20km 반경 내에 십여 개의 네크로폴리스(묘지군)로 이루어진 광대한 장례 복합지대의 중심에 자리한 빅스의 무덤은 폭이 약 3미터에 달합니다. 인근의 다른 무덤들보다 월등히 풍성한 이 무덤은, 켈트인들이 가장 중요한 죽은 이를 얼마나 성대하게 예우했는지를 보여줍니다. 무덤의 주인은 여성으로, 공주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남성만 허용되던 켈트 장례 의식의 혜택을 받을 만큼 그녀는 지역에서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녀는 기원전 480년경 돌무지(투멀루스) 아래의 무덤에 안장되었습니다. 시신은 전차 위에 놓였으며, 전차의 네 바퀴와 끌대는 분해되어 벽에 기대어 세워져 있었습니다. 고인은 호화로운 장신구로 치장되어 있었습니다. 발목에는 청동 고리, 팔목과 목에는 호박과 단단한 구슬로 만든 팔찌와 목걸이, 청동 목걸이, 피불라(브로치), 그리고 두개골에 아직 붙어 있던 감탄을 자아내는 금관(디아뎀)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또한 에트루리아산 청동 대야 세 개와 연회에 필요한 도구들도 함께 묻혔습니다. 무엇보다도 빅스의 명성을 결정지은 것은 뛰어난 크기와 완벽에 가까운 품질을 자랑하는 웅장한 청동 크라테르였습니다.

빅스 무덤의 부장품과 배치

무덤에서는 수천 조각의 도자기 파편, 철제 물건, 청동 식기, 브로치, 장신구(편암 팔찌와 호박 구슬), 거대한 크라테르, 그리고 장례용 전차가 발견되었습니다. 이 물품들의 대부분은 현지에서 만들어진 것이지만, 일부는 그리스나 이탈리아에서 온 것입니다. 이는 할슈타트 문화권과 지중해 세계 사이의 상업적 교류가 얼마나 활발했는지를 증명합니다.

무덤 내부의 배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시신이 놓인 전차는 벽을 따라 길게 배치되었고, 크라테르와 청동 식기들은 서쪽 벽을 따라 늘어서 있습니다. 음주용 그릇 세트는 크라테르 뚜껑 위에 놓였으며, 고인의 머리는 북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고인은 브로치, 다양한 장신구, 금 토르크(목걸이)로 치장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치는 우연이 아니라, 각 물건의 특별한 의미를 부각시키는 연출에 따른 것으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막대한 양의 술을 담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식기들과 크라테르는, 연회에서 '빅스의 여인'이 맡았던 주재자로서의 지위를 상징합니다. 전차에는 아폴론 신화, 즉 태양이 전차나 배를 타고 하늘을 도는 순환 여행을 암시하는 문양의 청동판이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발견된 유물 가운데 특히 방대한 그리스 항아리인 빅스의 크라테르와 토르크가 모든 이의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크라테르

이 크라테르는 고대 최대의 청동 그릇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렇기에 학자들은 당시 장인의 기술 수준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오늘날의 기술로도 재현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이 그릇은 높이 1.64m, 직경 1.27m에 무게는 208.6kg에 달하며, 용량은 1,100리터입니다. 용도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스타일의 그릇은 원래 진한 포도주를 물에 희석하기 위해 사용되었지만, 여기서는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위상을 과시하는 상징적 기능이 더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켈트 사회에서 술을 함께 나누어 마시는 행위가 족장의 권위를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 밝혀져 있습니다. 기원전 520년경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인들이 제작한 이 그릇의 장식은 매우 뛰어난 수준입니다. 뱀 꼬리로 끝나는 고르곤이 받치고 있는 나선형 손잡이, 그리고 호플리테스(중장보병) 행렬과 4두 마차가 부조로 새겨진 목 부분의 장식대가 특히 눈길을 끕니다.

토르크

황금 토르크 역시 이 시기 장신구 중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걸작입니다. 공주의 두개골에서 발견되었다는 점 때문에 이 장신구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 논란이 있습니다. 관(冠)일 가능성도 있지만, 일부 고고학자들은 매장 당시 붕괴로 인해 물건의 위치가 변했다고 보며, 이를 고인의 목을 장식하던 토르크로 간주합니다. 무게는 480g이며 오메가(Ω) 형태를 하고 있고, 배 모양의 양 끝은 바깥쪽으로 뻗어 있습니다. 양 끝은 사자 발톱 모양의 장식으로 본체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위에는 날개 달린 말, 즉 정교하게 조각된 페가수스가 새겨져 있습니다.

빅스의 무덤: 고대 최대의 크라테르가 잠든 켈트 공주의 안식처
이 장신구의 기원에 관한 연구 문헌은 매우 방대합니다. 에트루리아산일 수도 있고 현지 제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라도, 이 작품에 깊이 스며 있는 지중해권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갈리아 켈트 세계의 드문 생생한 증거

이처럼 풍성한 부장품은 고인의 제후급 신분을 의심할 여지 없이 보여줍니다. 특히 호흐도르프(Hochdorf) 무덤을 비롯해 같은 유형의 다른 무덤들도 이미 발견되었습니다. 이런 규모의 여성 무덤은 당시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음을 시사합니다.

출토 유물들은 복원 작업을 거쳤으며, 전차도 재조립되었습니다. 다른 제후급 무덤들과 마찬가지로, 이 부장품들은 고대 켈트인들의 부와 지중해 문명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줍니다.

빅스의 보물은 현재 코트도르 주 샤티용쉬르센에 있는 샤티요네 지역 박물관(Musée du Pays Châtillonnais)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발견 유적지 역시 프랑스 국립 구제고고학연구소(INRAP)가 진행하는 발굴 조사의 대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더 읽을거리

- Félicie Fougère, Bruno Chaume, 『빅스의 무덤: 역사와 전설 사이의 보물(The Tomb of Vix: A Treasure Between History and Legend)』, Fage Editions, 2016.

- Patrice Brun, 『켈트의 왕자와 공주: 유럽 초기 철기 시대, 기원전 850~450년(Celtic Princes and Princesses: The Early Iron Age in Europe, 850-450 BC)』, Errance,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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