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프랭클린 원정대의 미스터리, 두 번째 배 'HMS 테러호'가 마침내 발견되다

1845년 북서항로를 찾아 떠났다가 1848년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전설적인 영국 프랭클린 원정대. 그 두 번째 선박 HMS 테러호(HMS Terror)의 잔해가 마침내 캐나다 북극해에서 발견되면서, 19세기 최대의 해양 미스터리이자 비극 중 하나에 종지부가 찍혔다.

테러 만에서 발견된 HMS 테러호

재난에 가까웠던 존 프랭클린(John Franklin) 경의 원정대에서 잃어버린 첫 번째 배 HMS 이리버스호(HMS Erebus)가 발견된 지 겨우 2년 만이다. 캐나다 공원관리청(Parks Canada) 탐사팀은 캐나다 누나부트 준주의 테러 만(Terror Bay), 즉 배 이름과 똑같은 이름의 바다에서 두 번째 선박 HMS 테러호를 찾아냈다.

흥미로운 점은 발견 위치다. 테러호는 빙산에 갇혀 파손될 것으로 추정됐던 지점보다 무려 96km 남쪽에서 잠들어 있었다. 당초 학자들은 이 배가 윌리엄 왕섬(King William Island)과 빅토리아섬(Victoria Island) 사이 어딘가에서 유빙에 갇혀 좌초했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프랭클린 원정대의 미스터리, 두 번째 배  HMS 테러호 가 마침내 발견되다

얼음에 갇힌 'HMS 테러호'를 그린 판화

영국 일간 가디언(The Guardian)이 단독으로 보도한 바에 따르면, 테러호의 잔해는 얼어붙은 북극 바닷속에서 놀랍도록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었다. 1845년 5월 영국을 떠나 대西洋과 태平洋을 직접 연결하는 새로운 해상 항로, 이른바 '북서항로'를 개척하려 했던 두 척의 배는 3년간의 항해 끝에 1848년 승무원들에 의해 버려졌고, 결국 탑승했던 129명 전원이 굶주림과 혹독한 한기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소나기 화면에 나타난 거대한 실루엣

프랭클린 원정대의 미스터리, 두 번째 배  HMS 테러호 가 마침내 발견되다

HMS 테러호(2016년)와 HMS 이리버스호(2014년) 잔해 발견 지점. 주황색은 2008년 이후 조사된 두 개의 핵심 해역 © Parks Canada

가디언 기사를 집필한 캐나다 저널리스트 폴 왓슨(Paul Watson)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2016년 9월 3일, 조선 '마틴 베르그만(Martin-Bergmann)'호에 탑승한 10명의 승무원이 세 개의 부러진 돛대를 가진 'HMS 테러호'를 발견했다. 배는 해치가 거의 모두 닫힌 채, 윌리엄 왕섬 인근 테러 만의 미개척 해역 한복판에 반듯하게 서 있었다."

탐사선이 다음 해역으로 이동하려던 바로 그 순간, 고해상도 음파탐지기 화면에 기묘한 형체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당시 프랜시스 크로저(Francis Crozier) 함장이 지휘하던 HMS 테러호였다. 배는 해저면 위에 섬세하게 안정된 자세로 가라앉아 있었다.

프랭클린 원정대의 미스터리, 두 번째 배  HMS 테러호 가 마침내 발견되다

2016년 Parks Canada 탐사 작전: 시어 윌프리드 로리에(Sir Wilfrid Laurier)호에서 CCGS 인베스티게이터 하천정찰정 하역 장면 © Parks Canada

2016년 9월 10일 일요일, 연구진은 소형 무선조종 로봇의 도움으로 마침내 선체 내부 진입에 성공했다. 해상의 조사선에서 작전을 지휘하던 운영 총괄 에드리안 시노브스키(Adrian Schimnowski)는 이 과정을 상세히 설명했다.

2008년 당시 캐나다 총리 스티븐 하퍼(Stephen Harper)가 탐사를 시작한 이래, Parks Canada 고고학자들은 매년 탐사할 해역을 분담해 왔다. 프랑스 수중고고학자 엘리자베트 베이라(Elizabeth Veyrat, DRASSM)는 당시 현장과 긴밀히 소통하며 Sciences et Avenir에 이렇게 말했다. "발견 당시 세 척의 선박이 바다에 있었습니다. 탐사대 대부분이 탑승한 캐나다 해안경비대 쇄빙선 '시어 윌프리드 로리에'호와 캐나다 해군 'HMCS 샤위니건'호가 빅토리아 해협 북단을 항해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 아틱 리서치(Arctic Research)가 용선한 '마틴 베르그만'호가 '테러호'를 발견한 것입니다."

이누이트의 증언이 밝힌 극적인 우연

큰 이야기 속에는 늘 작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가디언에 따르면 테러호의 잔해는 마틴 베르그만호가 항로를 변경한 덕에 발견될 수 있었다. 승무원 중 한 명인 이누이트 출신 대원이 6년 전 낚시를 나갔을 때 테러 만 쪽 얼음 틈으로 커다란 나무 조각이 돌출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는 증언을 남긴 것이다. 이 말을 믿고 코스를 튼 결과였다. 이 특별한 작전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육지로 돌아오면 성대한 축배가 열릴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이렇게 완벽하게 보존된 배에서 앞으로 어떤 발견들이 쏟아져 나올지 기대감을 더한다.

프랭클린 원정대의 미스터리, 두 번째 배  HMS 테러호 가 마침내 발견되다

포장 얼음 위에 갇힌 HMS 이리버스호와 HMS 테러호의 선원들 © The Stapleton Coll./Bridgeman Images

그럼에도 침몰한, 완벽하게 준비된 두 척의 배

HMS 이리버스호와 HMS 테러호는 목재 들보와 철판으로 선체를 강화했고, 전통적인 돛에 더해 20마력 증기 엔진까지 갖춰 유빙 속에서도 항행할 수 있도록 설계된 최고 사양의 탐사선이었다. 선창에는 3년치 물자가 가득 실렸다. 밀가루 60톤, 소고기 14톤, 통조림 고기 15톤, 괴혈병 예방용 레몬까지. 영국을 출항할 때만 해도 이 원정의 성공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배들이 떠난 후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닿지 않았다. 결국 1848년 수색 원정대가 파견되기 시작했지만, 이후 52척이 넘는 배가 이리버스호와 테러호를 찾아 나섰고, 그 과정에서 또다른 비극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나 모두 허사였다.

유물이 전해준 최후의 기록

결정적인 단서는 1859년에야 등장했다. 프랭클린의 미망인이 고용한 탐사선이 비치 섬(Beechey Island)과 윌리엄 왕섬의 돌무더기(카이른) 사이에 숨겨진 두 통의 메시지를 발견한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두 배는 빅토리아 해협에서 얼음의 악력에 갇혀 1년 반 동안 꼼짝 못 한 채 갇혀 있었다고 한다.

함장 프랭클린과 원정대 23명은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채 1847년 6월 11일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1848년 4월 22일, 크로저 함장은 마침내 생존자 105명에게 선박을 떠나 육지로 걸어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후 얼음 속에서 보존된 첫 시신들이 발견되면서야 이들이 겪었던 고통의 실체가 서서히 드러났다. 그러나 결국 이 129명 중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17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북극의 얼음 아래 잠들어 있던 두 척의 배가 모두 발견됨으로써, 프랭클린 원정대의 비극은 이제 역사의 페이지에 기록될 준비를 마쳤다. 앞으로 진행될 발굴 조사가 이 전설의 원정에 대한 새로운 진실을 밝혀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