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트론헤임 성 우물에서 발견된 800년 된 해골, 바이킹 사가 속 1197년 사건을 입증하다

노르웨이 문화유산연구소(NIKU) 고고학자들이 트론헤임의 스베레스보르 성(Sverresborg) 발굴 과정에서 약 800년 된 인간 해골을 발견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유해는 우물 바닥에서 출토되었으며, 중세 바이킹 시대를 기록한 문헌에 등장하는 실제 역사적 사건을 고고학적으로 확인시켜 주는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우물의 위치와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노르웨이 왕들의 연대기인 스베레 사가(Sverre Saga)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사가는 중세 바이킹 시대의 사건을 상세히 기술한 몇 안 되는 사본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문서로서 이 원고의 진위 여부는 발견 이후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발굴을 통해 사가의 일부 내용이 고고학적 증거로 확인되었고, 그 정확한 세부 묘사의 수준은 연구자들마저 놀라게 했습니다.

트론헤임 성 우물에서 발견된 800년 된 해골, 바이킹 사가 속 1197년 사건을 입증하다

발굴을 지휘한 고고학자 안나 피터슨(Anna Petersen)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이토록 먼 과거의 전쟁 행위와 직접 연결된 개인의 유해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는 스베레 사가에 묘사된 내용과 해당 사건의 연도인 1197년을 확증해 줍니다.

사가에 기록된 무용담에 따르면, 스베레 시구르손(Sverre Sigurdsson) 왕과 그의 용병 집단 비르케바이너(Birkebeiner)는 성에서 라이벌 세력 바글러(Bagler)의 공격을 받아 패배했습니다. 바글러는 스베레의 부하 한 명을 우물에 던져 넣은 뒤 돌로 덮었고, 건물을 불태워 성으로의 물 공급을 끊었다고 전해집니다.

트론헤임 성 우물에서 발견된 800년 된 해골, 바이킹 사가 속 1197년 사건을 입증하다

비르케바이너는 1184년 마그누스 5세(Magnus V) 왕에 맞서 무기를 들고 권력을 장악한 반항적인 농민 전사 집단이었습니다. 이들은 너무 가난해서 신발 대신 자작나무 껍질 조각을 발에 감았는데, 적들이 붙여준 별명이 바로 비르케바이너, 즉 문자 그대로 '자작나무 다리'였습니다.

바글러(Bagler)는 반대로 성직자와 상인까지 포함한 노르웨이 귀족 세력이었습니다. 이들은 노르웨이의 스베레 1세를 왕좌에서 몰아낼 목적으로 잉게 마그누손(Inge Magnusson)을 중심으로 결집했습니다.

우물과 유골은 2014년 시험 발굴에서 처음 발견되었고, 2016년 전면 발굴을 통해 회수되어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에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 해당 인물이 12세기 말, 즉 사가에 언급된 시기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트론헤임 성 우물에서 발견된 800년 된 해골, 바이킹 사가 속 1197년 사건을 입증하다

스베레스보르 성은 시온(예루살렘에 있던 다윗 왕의 성에서 따온 이름)이라고도 불리는 요새로, 1183년 중세 도시 니다로스(현 트론헤임)에 스베레 왕이 건설했으며 노르웨이에 건설된 최초의 요새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1197년 전투 이후 성은 어느 시점 재건되었지만 정확한 시기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전투에서 살아남아 1202년 사망할 때까지 통치를 이어간 스베레 자신이 재건을 주도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1909년부터 이 성에는 노르웨이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문화 박물관 중 하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