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레니시마(베네치아)의 심장부에는 산마르코 종탑이 도시의 상징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높은 종탑이 자리한 곳은 산마르코 광장이며, 그 높이는 약 98미터에 달합니다. 종탑(캄파닐레)은 일반적으로 여러 층의 아치가 뚫린 정사각형 또는 원형 탑으로, 교회나 대성당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된 건축물로 세워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종탑에는 신자들에게 기도를 알리는 종이 보관되었으며,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탈리아 도시 간의 자존심을 건 경쟁 대상이 되어 그 건축이 위대한 예술가들에게 맡겨지기도 했습니다.
베네치아 최초의 종탑 건설 (9~19세기)
베네치아 세레니시마 공화국의 제17대 도제 피에트로 트리부노(Pietro Tribuno)가 888년 산마르코 종탑 건설에 착수했습니다. 공사는 12세기 도메니코 모로시니(Domenico Morosini) 도제의 통치기에 완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첫 번째 종탑'의 건설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1080년, 탑을 세우던 중 무게를 견디지 못한 땅이 무너지면서 공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당시 베네치아의 통치자였던 실비오 도메니코는 남아 있는 부분을 철거하라고 명령하고, 몇 걸음 떨어진 산마르코 광장에 건물을 다시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1489년의 화재는 세스티에르(베네치아의 6개 지구) 대부분을 황폐화시켰고, 산마르코 종탑도 심각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1178년에 설치되었던 나무 첨탑이 파괴된 것은 이 재난의 규모를 잘 보여줍니다. 에밀리아로마냐 지방 포를리의 종탑에서 영감을 받은 이 '첫 번째 종탑'은 1511년에도 시련을 겪었습니다. 지진이 건물을 다시 한번 약화시켰고, 결국 탑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더 튼튼한 새 탑을 재건하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건축가 조르조 스파벤토(Giorgio Spavento)와 바르톨로메오 본(Bartolomeo Bon)은 종탑에 대리석 종루를 더했고, 그 위에는 성 마르코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사자 조각상이 놓였습니다. 1513년에는 탑 꼭대기에 황금 천사상이 올려졌습니다.
수 세기에 걸쳐 여러 차례의 화재가 종탑을 약화시켰습니다. 1745년 4월 13일에는 큰 재해로 벽돌에 균열이 생기고 낙석이 떨어져 여러 베네치아 시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실제로 베네치아의 이 '원형 종탑'이 완성되기까지 거의 1000년이 걸린 셈입니다. 잇따른 재난으로 건물은 크게 약화되어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채 방치되었습니다.
1902년의 붕괴

수 세기에 걸친 약화는 산마르코 종탑에 결국 큰 비극을 불러왔습니다. 1902년 7월 14일 오전 10시, 높이 98미터의 산마르코 종탑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1549년 건축가 산소비노(Sansovino)가 지은 로지에타(Loggetta) 역시 함께 파괴되었습니다. 다행히 이 붕괴로 인한 희생자는 종탑의 수호 고양이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기적적으로도 산마르코 대성당과 도제 궁전은 무사했습니다. 실제로 붕괴 며칠 전부터 베네치아인들은 삐걱거리는 소리와 갈라지는 소리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고, 비극이 일어난 날 아침에는 안전 경계선이 설치되고 광장이 대피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기에 두 명의 사진가가 이 역사적인 순간을 영원히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Com'era, dov'era”, '있던 그대로, 있던 그 자리에'. 이것은 재해가 일어난 바로 그날 저녁, 산마르코 종탑의 재건을 결정한 베네치아 시의회의 선언이었습니다. 1903년 초 첫 번째 돌이 놓였고, 종탑은 원래의 자재로 다시 세워졌습니다. 이 비극에 유럽 전역이 감동했고, 베네치아로 기부금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1912년 4월 25일 — 타이타닉호 침몰 열흘 뒤이자 성 마르코 축일 — 새 종탑이 마침내 개장했습니다. 사실 산마르코 종탑이 무너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상 다섯 번(1080년, 1388년, 1489년, 1511년, 그리고 1902년) 붕괴했던 것입니다.
불멸의 상징, 산마르코 종탑
산마르코 종탑에는 이전 '버전'과 마찬가지로 다섯 개의 종이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울리는 '마랑가나(Marangona)'는 하루 일의 시작과 끝을 알렸고, '말레피치오(Maleficio)'는 사형 선고를 선포했습니다. '노나(Nona)'는 아홉 시(정오)를 알리는 종이었고, '트로티에라(Trottiera)'는 치안판사들에게 도제 궁전 회의 참석을 재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레가디(Pregadi)'의 종소리는 상원 의원들에게 도제 궁전으로 오라고 요청했습니다. 베네치아인들이 도시의 상징이자 일상생활에 늘 중요한 역할을 해온 종탑에 깊은 애정을 느끼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오래된 도시 베네치아는 마치 불멸의 존재처럼 보입니다. 이를 확인하려면 저녁의 세레니시마를 한 번 거닐어 보면 됩니다. 베네치아인들은 종탑이 도시의 진정한 상징이기에 그토록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파괴되었지만 언제나 다시 세워진 산마르코 종탑, 그야말로 세레니시마의 불멸의 상징입니다. 베네치아 사람들이 이 탑을 '집의 주인(padron di casa)'이라고 불러온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더 읽을거리
- T. Sammartini, 『종탑에서 본 베네치아』, 2003.
- Marion Kaminski, 『베네치아: 예술과 건축』,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