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글래스고 이야기: 산업혁명의 심장에서 유럽 문화 도시로, 1,500년 도시의 모든 것

글래스고 이야기: 산업혁명의 심장에서 유럽 문화 도시로, 1,500년 도시의 모든 것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 서해안에서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천 개의 얼굴'을 지닌 과거의 상속자입니다. 18세기 식민지 무역의 전성기에는 대영제국의 기항지였고, 산업혁명의 원동력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제임스 와트(James Watt)가 증기기관을 완성한 결정적인 사건은 바로 이 도시의 대학에서 일어났습니다. 189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도시를 가로지르는 클라이드 강변에 늘어선 조선소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원양 정기선들을 배출했습니다. 그러나 경제적 호황은 곧 인구 과잉으로, 이어서 탈산업화의 희생자가 된 노동계급의 고통으로 이어졌습니다. 실업, 빈곤, 범죄가 1970~1980년대 도시를 짓눌렀지만, 글래스고는 위기에서 다시 일어섰습니다. 1990년대부터 예술과 문화의 열풍이 도시를 사로잡았고, 이는 새로운 혁신의 원천인 디지털 경제로 이어지며 글래스고의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중세 글래스고: 이야기가 시작된 지방 도시

글래스고의 역사는 성 뭉고(Saint Mungo)가 6세기에 수도원을 세운 자리, 즉 현재의 글래스고 대성당(Glasgow Cathedral) 부지에서 시작됩니다. 이 기독교 선교사는 새, 나무, 물고기, 종을 아우르는 네 가지 기적의 주인공으로 전해지며, 이 네 가지 요소는 오늘날 스코틀랜드 도시이자 글래스고의 수호성인인 성 뭉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글래스고 이야기: 산업혁명의 심장에서 유럽 문화 도시로, 1,500년 도시의 모든 것중세 시대에 도시는 종교 중심지를 중심으로 북쪽에서 성장했지만, 남쪽의 강둑, 즉 클라이드(Clyde)를 따라서도 발전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는 하이 스트리트(High Street)가 이 두 개의 인구 중심지를 연결합니다. 클라이드 강은 풍부한 어획량을 제공했고, 온화한 기후는 과일과 채소 생산에도 유리했습니다. 글래스고는 인근 인구 밀집 지역은 물론 당시에는 작은 도시에 불과했던 에든버러와의 교역을 통해서도 평화롭게 번영했습니다.

중세 도시의 흔적 가운데 오늘날까지 남은 상징적 기념물은 단 두 곳, 바로 글래스고 대성당과 글래스고 대학교입니다.

발견할 유산: 대성당과 대학

글래스고 대성당은 이 도시의 성당 중 가장 유명한 곳으로,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중세 건축물이자 고딕 건축의 걸작입니다. 어둡고 웅장한 외관과 달리 내부는 영국 최고 수준의 스테인드글라스 컬렉션이 방문객을 압도합니다. 대성당에 기대어 언덕 위로 펼쳐진 볼거리는 바로 그 놀라운 묘지입니다. 나무가 늘어선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켈트 십자가, 화려한 열주식 묘비, 심지어 오벨리스크까지 만날 수 있어 건축적 독창성에 빠져들게 됩니다.

글래스고 이야기: 산업혁명의 심장에서 유럽 문화 도시로, 1,500년 도시의 모든 것글래스고 대학교는 1451년 도시 서쪽에 문을 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이자, 더 넓게는 영미권(앵글로색슨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유서 깊은 학법인 셈입니다. 이곳과 인연이 깊은 인물로는 '자유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Adam Smith), 1926년 최초의 텔레비전을 발명한 존 로지 베어드(John Logie Baird), 엔지니어 제임스 와트, 그리고 우리에게 더 가까운 작가 윌리엄 보이드(William Boyd) 등이 있습니다. 잘 정돈된 잔디밭이 있는 광장과 안뜰을 따라 걷다 보면, 꼭대기에 포탑이 솟고 커다란 고딕 양식 창문이 뚫린 어두운 석조 건물들이 늘어선 풍경이 펼쳐집니다. 회랑을 지나 본관인 길버트 스콧 빌딩(Gilbert Scott Building)과 높이 85m의 종탑 기슭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춰 보세요. 이 건물의 설계자인 조지 길버트 스콧 경(Sir George Gilbert Scott)은 중세 말기 '고딕 리바이벌'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가였습니다.

잉글랜드와의 연합법, 그리고 글래스고의 도약

영국 식민지와의 대대적인 무역

이제 글래스고 역사의 두 번째 장이 시작됩니다. 글래스고는 수십 년 사이에 지방 도시에서 대영제국 제2의 도시로 변모합니다. 1707년 5월 1일, 스코틀랜드인들은 독립 700년 만에 영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잉글랜드와 체결한 연합법(Act of Union)에 따라 모든 권한이 런던으로 이전되었고, 이로써 영국(그레이트브리튼)이 탄생했습니다. 글래스고에게 이는 전 세계로 통하는 기회의 문이 열린 순간이었습니다. 이 도시는 대서양 연안의 전략적 지리적 이점을 누렸고, 그 앞에는 대영제국이 활짝 펼쳐져 있었습니다.

글래스고의 무역상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식민지와의 담배 무역을 통해 빠르게 부를 축적했습니다. 1775년 미국 독립전쟁 이후에는 설탕 무역, 특히 면화 무역이 무역의 주축이 되었습니다. 토머스 립턴 경(Sir Thomas Lipton)과 같은 거대 재벌의 탄생 배경에는 노예제에 대한 방관이 있었고,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윤리적 문제는 외면되었습니다. 그 결과 글래스고는 전 지역에 면화를 공급하는 거점이 되었고, 방적업이 발전하면서 스코틀랜드 경제는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업혁명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글래스고 이야기: 산업혁명의 심장에서 유럽 문화 도시로, 1,500년 도시의 모든 것상인의 도시, '무역의 도시'

부유한 상인들이 도심에 거주하면서 이 지역에는 '머천트 시티(Merchant City)', 즉 '상인의 도시'라는 이름이 남았습니다. 오늘날 방문객들이 도보로 둘러보고 싶어 하는 이곳에는 호화로운 저택, 창고, 개조된 시대적 사무실들이 하이퍼센터에서 멀지 않은 거리 곳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곳으로는 '담배 영주'들이 설탕과 담배 거래를 협상하던 담배 거래소(버지니아 스트리트)와 상인 길드가 자리했던 트레이드 홀(글래스퍼드 스트리트)이 있습니다.

산업과 노동자 계층의 도시

경제적·예술적 번영을 향해

글래스고 이야기: 산업혁명의 심장에서 유럽 문화 도시로, 1,500년 도시의 모든 것18세기 말부터 글래스고는 신흥 산업혁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는 주로 방적 공장의 기계화가 이끈 결과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글래스고 대학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개량한 것은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증기기관이 생산하는 에너지는 생산성을 10배로 끌어올렸고, 방적 공장의 생산량이 급증하자 곧 모든 산업 부문이 그 뒤를 따랐습니다. 상황은 글래스고에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이 도시에는 과학자와 엔지니어가 뛰어난 수준의 교육을 받는 유명한 대학이 있었고, 그들은 투자자들과 협력했습니다. 게다가 기업가들 다수가 훌륭한 기술적·과학적 배경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혁신이 가속화되고 생산이 촉진되었으며, 철강과 중공업은 1960년대까지 글래스고 경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클라이드 강의 조선업은 세계 최고였습니다.

18세기 초 이래로 도시는 계속 부유해졌습니다. 글래스고의 서쪽과 중심부에는 우아한 신고전주의 또는 빅토리아 양식의 '저택'들이 들어섰고, 도심은 신흥 산업계 거물들이 자금을 댄 기념비적인 공공 건물들로 빛을 냈습니다. 글래스고의 중심 광장인 조지 광장(George Square)에서는 시청(City Chambers)과 같은 인상적인 조지아 시대 기념물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웨스트 엔드의 켈빈그로브 미술관·박물관(Kelvingrove Art Gallery and Museum)은 일부 평론가들에 따르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영향을 받은 이국적인 건축 양식을 보여줍니다.

글래스고 이야기: 산업혁명의 심장에서 유럽 문화 도시로, 1,500년 도시의 모든 것아르누보는 이 스코틀랜드 도시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찰스 레니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와 '글래스고 스타일(Glasgow Style)' 예술가들은 건축과 디자인 분야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매킨토시는 유럽 아르누보를 가장 잘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전통적 스타일의 낡은 틀을 걷어냈습니다. 도시 남부의 '예술 애호가를 위한 집(House for an Art Lover)'에서 볼 수 있듯이,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기능적인 인테리어와 절제된 양식화 장식, 그리고 오늘날 관광객과 글래스고의 '상류 사회'를 사로잡는 절묘한 다실(茶室)까지 그의 유산은 도시 곳곳에 살아 있습니다.

… 그리고 사회적 불행과의 마주

대비는 뚜렷했습니다. 서쪽과 중심부의 화려한 외관과 세련된 아르누보 건물들과 대조적으로, 클라이드 강변과 도시 동쪽에는 수 마일에 달하는 빈민가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20세기 초 글래스고는 인구 과잉에 시달렸습니다.
• 1724년: 15,000~20,000명
• 1800년: 77,000명
• 1850년: 250,000명
• 1880년: 587,000명(세계 6위 도시)
• 1912년: 100만 명

글래스고 이야기: 산업혁명의 심장에서 유럽 문화 도시로, 1,500년 도시의 모든 것글래스고는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아주 일찍부터 도시 외부의 인구 유입, 특히 대규모 이주 물결에 의존했습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고지대 강제 퇴거(하이랜드 클리어런스)로 고향에서 쫓겨났고, 아일랜드인들은 대기근을 피해 도망쳐 왔습니다. 그러나 도시는 급격히 늘어나는 노동 인구를 더 이상 흡수하지 못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비위생적인 공동주택에 빽빽이 살았는데, 붉은색 또는 황토색 사암으로 지어진 이 2~4층 건물들은 도시 경관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한 가족은 두 개의 방, 즉 침실과 주방으로 이루어진 '방 앤 키친(room and kitchen)'에서, 혹은 침대 하나가 놓인 움푹 파인 공간이 있는 주방인 '싱글 엔드(single end)'에서 생활해야 했습니다. 싱글 엔드에는 최대 8명까지 함께 살기도 했습니다. 전염병이 만연했고, 1832년에는 콜레라로 3,00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작가 다니엘 디포(Daniel Defoe)가 '글래스고는 영국에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답고 가장 잘 지어진 도시 중 하나'라고 극찬했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갔습니다. 그것은 1724년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지만, 근본적인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심각한 노동자 주택 문제를 해결할 뚜렷한 대책이 없어 보였습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슬럼 클리어런스(slum clearance)', 즉 빈민가 철거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국은 거리 전체를 철거하고 주민들을 새로운 고층 아파트로 이주시켰으며, 그중에는 지방자치단체가 도시 외곽에 지은 30층짜리 건물들도 있었습니다.

탈산업화와 재생

조선소의 종말

클라이드 조선업의 역사에서 기억해야 할 날짜가 있습니다. 바로 정점이자 피할 수 없는 쇠퇴의 시작을 함께 의미하는 1967년 9월 20일입니다. 이 날은 글래스고 사람들, 특히 '퀸 엘리자베스 2세(QE2)' 호 건조에 참여한 4,000명의 노동자들의 마음에 새겨진 날로 남았습니다. 여왕이 직접 행사에 참석했고, 30,000명의 군중이 이를 지켜보았습니다. 길이 300m, 승객 약 2,000명을 수용하는 정교한 기술의 결정체가 대서양 횡단 항해에 나서기 위한 명명식을 거친 것입니다. 계급의 자부심이 넘쳤습니다. 광고 카피는 이렇게 외쳤지요. "QE2가 다른 배와 유일하게 공통점이 있다면, 물에 뜬다는 것뿐이다." '퀸 엘리자베스 2세' 호는 당시 항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컴퓨터를 탑재한 유일한 상선이었습니다.

그러나 4,000명의 노동자들은 이 정기선의 진수가 자신들의 시대의 끝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퀸 엘리자베스 2세' 호는 클라이드 강변에서 건조된 마지막 대서양 횡단 여객선이었습니다. 독일과 일본의 경쟁, 그리고 지나치게 높은 생산 비용으로 인해 글래스고의 조선소들은 쇠퇴의 길을 걸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기관차를 선박에 실어 옮기던 피니스턴 크레인(Finnieston Crane)만이 강변에 검은 실루엣으로 우뚝 서 있습니다. 조선업뿐만 아니라 지역 산업 전체가 느리고 고통스러운 쇠퇴의 국면에 들어섰습니다. 1970~1980년대에는 실업, 빈곤, 알코올 중독, 범죄가 급증했습니다. 글래스고는 암울했고, 그림자가 짙었습니다.

문화와 혁신을 통한 재생

글래스고 이야기: 산업혁명의 심장에서 유럽 문화 도시로, 1,500년 도시의 모든 것1990년 글래스고는 유럽 문화 도시로 지정되었고, 1999년에는 영국 건축·디자인 도시, 2008년에는 유네스코 음악도시로 선정되었습니다. 이 20년은 도시의 새로운 역사적 무대였습니다. 창조적 활력이 도시를 되살렸고 경제를 되찾았습니다. 산업은 다각화되었고, 스코틀랜드 최대 도시는 다시 한번 혁신의 온상이 되었습니다. 조선소가 사라진 클라이드 강변은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들의 표현의 장이 되었습니다. 1997년 노먼 포스터(Norman Foster)가 설계한 아르마딜로 형태의 강변 강당, 바로 옆의 13,000석 규모 콘서트홀 SSE 하이드로(SSE Hydro), 그리고 자하 하디드(Zaha Hadid)가 지그재그 외관을 디자인한 리버사이드 박물관(Riverside Museum)이 그 예입니다.

오늘날 글래스고는 영국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 중 하나입니다. 에든버러와 함께 '실리콘 글렌(Silicon Glen)'을 이루는데, '글렌(glen)'은 켈트어로 '계곡'을 뜻하며 '실리콘 밸리'에서 파생된 용어입니다. 두 도시를 잇는 이 지역에는 기술 산업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으며, 오늘날 글래스고는 이 분야에서 영국 최고의 투자 목적지로 꼽힙니다.

1,500년의 역사는 무엇을 남겼을까요? 60만 명이 넘는 주민이 거주하는 이 도시는 여전히 대조적입니다. 빈곤의 실체를 품고 있는 동시에 즐겁고 역동적인 도시이며, 현대적이고 혁신적인 도시의 풍경 곳곳에는 때로 황폐해진 산업의 과거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글래스고는 놀랍고, 매혹적이며, 많은 질문을 던지는 도시입니다. 그 역사를 아는 것이야말로 이 도시의 특징을 이해하는 열쇠일 뿐만 아니라, 글래스고와 사랑에 빠지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참고문헌

- Michael Fry, 《Glasgow: A History of the City》, Zeus Ltd, 2017
- Robin Ward, 《Exploring Glasgow》, Birlinn Ltd, 2017
- 《스코틀랜드 여행 백과사전》, Gallimard,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