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멕시코 정복의 숨은 진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무기 생산을 위해 원주민 제련 기술에 의존하다

17세기, 멕시코 정복 이후 이어진 식민지 시대에 스페인 사람들은 무기를 녹이고 무기고를 양호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현지 공동체의 금속공학 지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멕시코 정복의 숨은 진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무기 생산을 위해 원주민 제련 기술에 의존하다

스페인에 의한 멕시코 정복(1519~1521년).

거의 활용되지 않았던 민족지학적 자료와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을 교차 분석하자, 멕시코 정복사의 한 단면이 새로운 빛으로 드러났습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MIT) 캠브리지 캠퍼스에서 고고학 및 고대 기술을 가르치는 도러시 호슬러(Dorothy Hosler) 교수가 진행한 이번 연구는 현재 멕시코 남부에 위치한 해안 주 게레로(Guerrero)에서 수행되었습니다. 연구팀은 시에라마드레델수르(Sierra Madre del Sur) 산맥의 엘만촌(El Manchón)에 있는 오래된 제련소에 쌓인 방대한 구리 광재(슬래그) 퇴적물을 연구하는 데 4년을 투입했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17세기에 '뉴스페인(New Spain)'이라 불린 이 고립된 지역에 처음 도착한 스페인 정착민들이 무기 제조에 필요한 구리를 생산하기 위해 원주민 야금술사들의 지식에 의존해야 했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이는 지금까지 역사 기록으로만 전해져 오던 내용을 고고학적으로 확인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학술지 라틴 아메리카 고대(Latin American Antiquity)에 발표된 이 연구는 콩키스타도르들이 구리 제련 기술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음을 상기시킵니다. 실제로 16세기 스페인에서는 구리 광산이 하나도 개발되지 않았으며, 이베리아 반도에서 사용된 모든 가공 금속은 중부 유럽과 스칸디나비아에서 수입된 것이었습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구리를 제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이미 제련을 해오던 원주민들과 협력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라고 도러시 호슬러 교수가 Sciences et Avenir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했습니다.

수 세기 동안 채굴된 구리 광석

현지 사회들은 이 광물을 수 세기 동안 활용해 왔습니다. 금에 가까운 아름다운 색감 때문이었고, 종종 금과 합금되기도 했으며, 무덤에서 다수 출토된 소방울과 종 같은 의식용 물건을 만드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새롭게 정복된 멕시코를 일컬던 뉴스페인에서 콩키스타도르들은 대량의 구리 광재가 발견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특히 포병 무기용으로 절실히 필요했던 이 금속을 대량으로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식민지 시대의 역사 문서들을 통해 이미 이론적으로 이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 문서들은 특정 전초기지에 주둔한 스페인 사람들이 구리를 확보하기 위해 세금 감면과 기타 경제적 특권을 조건으로 현지 주민들과 협상해야 했음을 보여줍니다"라고 해당 논문의 공동 저자인 포르투갈 포르투 대학교의 역사학자 요한 가르시아 사이두아(Johan Garcia Zaidua)가 설명했습니다.

1521년,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 5세를 위해 아즈텍 제국을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 본인도 현장에서 성공적인 시험을 거친 후 뉴스페인에서 청동 화포를 주조할 여건이 충분하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현지 노하우 덕분에 먼 변경 지역에 있던 스페인 사람들은 정복 조직의 물자 부족을 극복하고 무기를 재생산·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멕시코 정복의 숨은 진실: 스페인 정복자들이 무기 생산을 위해 원주민 제련 기술에 의존하다

엘만촌(게레로)에서 정착민들이 사용한 메소아메리카식 제련로 중 하나의 발굴 당시 모습. © 도러시 호슬러 / MIT

엘만촌에서 고고학자들은 유럽과 현지의 지식이 융합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도러시 호슬러와 동료들은 손으로 작동하는 유럽식 풀무구로 공기를 공급하는 밀폐형 하이브리드 제련로의 잔해를 확인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형태였습니다. 이러한 기술적 개선으로 높은 공기 공급량을 바탕으로 더 높은 용융 온도에 도달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생산량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실제로 엘만촌의 집약적인 생산 활동은 1630년경 시작되어 1825년경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성한 재료가 초자연적인 존재를 상징하고 불러일으켰던 이 땅에서, 현지 주민들이 억압의 도구로 쓰인 화포와 무기의 등장을 목격했을 때 겪었을 충격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습니다"라고 호슬러 교수는 말을 맺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유망한 연구는 지역 내 마약 카르텔의 활동으로 인한 사회 불안 속에 중단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메소아메리카 선콜럼버스 금속공학의 역사

중국, 안데스, 콜롬비아, 근동 지역과 달리, 멕시코부터 벨리즈,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니카라과를 거쳐 코스타리카까지 이르는 지역인 메소아메리카에서는 금속의 사용이 서기 700년경에야 나타난 것으로 보입니다. 1100년 이전에는 대부분의 물건이 순수 구리로 만들어졌으며, 이후에는 구리-주석(Cu-Sn), 구리-비소(Cu-As), 구리-은(Cu-Ag), 금-구리(Au-Cu) 합금이 점차 보편화되었습니다. 멕시코 서부 지역의 민족들은 금속의 색과 소리에 매력을 느꼈고, 이렇게 만들어진 물건들은 신성하고 살아 있으며 강력한 힘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흥미롭게도 선콜럼버스 시대의 금세공인들은 철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는데, 아마도 철을 녹이는 데 필요한 섭씨 1536도의 온도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추측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