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외스테르순드(Östersund)의 잠틀리 박물관에 소장된 외베르호그달 태피스트리(Överhogdal Tapestry)는 바이킹 시대를 대표하는 귀중한 직물 유물입니다. 학계의 추정에 따르면 제작 연대는 11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가며, 천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 완성도와 역사적 가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이외 태피스트리에 필적한다는 평가를 받는 진정한 걸작입니다.
외베르호그달 태피스트리, 예상치 못한 발견
이 태피스트리는 1910년, 화가 폴 욘제(Paul Jonze)가 스웨덴 중부 옌틀란드(Jämtland) 지방의 작은 마을 외베르호그달(Överhogdal)에 있는 교회 헛간에서 우연히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발견된 태피스트리는 지역 유산 보존에 앞장서던 외스테르순드 지사의 부인 엘렌 비덴(Ellen Widén)에게 전해졌는데, 그녀는 무심코 욕조에서 직물을 세탁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태피스트리는 이 거친 세탁 과정에서도 무사히 견뎌냈고, 1년 뒤인 1911년에는 헬레나 외베리(Helena Öberg)가 외베르호그달을 방문해 본관과 떨어진 곳에서 새로운 조각 세 개를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폴 욘제가 태피스트리를 처음 발견했을 때 일부 조각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잠틀리 박물관의 전시 모습.
잠틀리 박물관의 전시·학습·공공서비스 책임자인 토르예르드 노텔리드(Torgärd Notelid)는 당시의 생생한 일화를 전합니다. 잃어버린 조각을 찾기 위해 헬레나 외베리는 다음 해 다시 외베르호그달을 찾았습니다. "교회에 도착했을 때 한 노인을 만나 방문 목적을 물었고, 그녀는 농담처럼 '태피스트리에서 없어진 부분을 찾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자신의 집으로 따라오라고 했고, 그곳에서 그녀는 유명한 작품의 한 조각을 찾아냈습니다. 초라한 집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인형을 안고 노는 어린 소녀가 있을 뿐이었습니다."
노인이 인형 덮개가 어디 있는지 묻자 어린 소녀는 낡은 장롱을 가리켰습니다. 마침 아이의 어머니가 들어와 장롱에서 담요를 꺼냈는데, 그것이 바로 없어진 조각 중 하나였습니다. 어린 소녀는 자신의 인형 담요를 내주길 거부하고 울음을 터뜨렸고, 헬레나는 왕관 두 개를 건네며 인형용 새 담요를 약속했고,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켰다고 합니다.
다음 날 그녀는 두 남자가 수리 작업을 하던 교회로 향했습니다.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자, 그중 한 남자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천 조각 하나를 꺼내 보였습니다. 그는 등잔을 닦을 걸레를 찾다가 설교단 계단 밑에서 그 천을 발견했는데, 너무 두꺼워서 버리지 못하고 주머니에 넣어두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시 계단 밑을 샅샅이 뒤져 태피스트리의 또 다른 조각을 추가로 찾아냈습니다.
천 년을 견딘 전통 직조 기술
발견 당시 외베르호그달 태피스트리는 200×35cm 크기의 긴 패널 세 개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직물은 가장 오래된 직조 기법 중 하나인 이중직(double weave)으로 짜여졌으며, 이 기법은 더 간단하고 빠른 방식이 등장하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날실의 짝수 실을 위사로 감싼 뒤, 위사를 앞으로 가져와 홀수 실을 감싸는 방식으로, 동양 양탄자에 사용되는 것과 동일한 원리입니다.
태피스트리의 배경은 리넨(아마) 실로 짜였고, 도안은 두 가닥의 양모 위사로 표현되었습니다. 양모는 옌틀란드 지역에서 키운 양에서 얻은 것이며, 식물성 염료로 물들였습니다. 빨강에는 꼭두서니, 파랑에는 쪽을 사용했고, 노랑은 베어베리(bearberry)로 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녹색을 얻으려면 노란색 염료와 흙을 섞어야 했다고 전해집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신비의 문양
왼쪽 장면에서는 십자가와 교회처럼 기독교에서 영감을 받은 상징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이킹 시대의 직물에 기독교 상징이 새겨져 있다는 점은 매우 흥미로운데, 이를 통해 당시 북유럽 국가에서 기독교화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그리고 강력하게 확산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토르예르드 노텔리드는 태피스트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곳곳에 온갖 종류의 동물과 인물이 등장합니다. 다리가 넷 또는 여섯 개 달린 말, 무스, 순록, 웅장한 뿔과 꼬리를 지닌 사슴, 구불거리는 형체의 기괴한 모습, 새, 개,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환상적인 동물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태피스트리의 왼쪽을 향해 있습니다. 동물들 사이로 하찮아 보이는 사람들도 있고, 곳곳에 더 중요한 인물도 배치되어 있습니다. 배, 건물, 생명의 나무, 각종 표지판도 보입니다. 이 요소들은 무작위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분명 어떤 이야기를 전하려는 듯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태피스트리 왼쪽 부분에 대해서는 대체로 기독교에서 영감을 받은 의미라는 데 의견이 모이며, 교회와 십자가가 그 증거로 꼽힙니다. 하지만 나머지 두 부분을 두고는 학자들 사이에서조차 가설이 크게 갈립니다. 천 년 전 직공이 담고자 했던 메시지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Histoire-pour-tous를 위해 폴 앙베르(Paul Humbert), 클레멘틴 루름(Clémentine Lourme), 마리옹 브랑쿠르(Marion Brancourt)가 집필한 글, 2014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