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멘 다르쿠르(Domaine d'Harcourt)의 역사는 곧 노르망디의 역사와 궤를 같이합니다. 911년, 프랑스 국왕 샤를 1세와 노르만족 지도자 롤로 사이에 생클레르쉬르엡트 조약이 체결되면서 노르망디 공국이 탄생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롤로는 경작지로 이루어진 하코트(Harcourt) 영지를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데인인 베르나르(Bernard the Dane)에게 하사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코트 가문의 초대 영주 앙슈틸 드 하코트(Anchetil de Harcourt)가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1세기의 일입니다. 그 후 수백 년 동안 성과 하코트 가문의 운명은 노르망디 공국, 나아가 프랑스의 역사와 긴밀하게 얽혀 왔습니다. 오늘날 도멘 다르쿠르는 중세 성, 창립 200주년을 맞이한 수목원, 그리고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샤토 다르쿠르, 축조의 역사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성곽과 둘레벽, 해자는 12~14세기에 축조된 것입니다.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정복자 윌리엄과 함께 싸운 에랑 드 하코트(Errand d'Harcourt)가 11세기에 세운 목조 성과 모트(motte)의 흔적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습니다. 참고로 하코트 가문의 일부는 이 전투 이후 잉글랜드에 정착했습니다.
성과 하코트 가문을 직접 언급한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성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1173년, 리처드 '사자심왕'의 측근이었던 로베르 2세 드 하코트(Robert II de Harcourt)가 베크엘루앵 수도원에 남긴 헌장에서 비롯됩니다. 이 시기에 사각형 주탑이 세워졌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둘레벽을 따라 반원형 탑들이 세워졌습니다. 1339년에는 하코트 영지가 중요한 특권을 얻습니다. 장 4세(Jean IV) 소유의 6개 샤텔레니(châtellenie)가 통합되어 하나의 백작령을 이루게 된 것으로, 당대 하코트 백작의 권력 상승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이러한 특권을 바탕으로 하코트 가문은 북쪽 출입문을 폐쇄하고 아래쪽 안뜰로 확장하며, 남쪽 출입문인 '샤틀레(Châtelet)'를 활용해 성을 증축·재편하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노르망디 공국의 특수한 역사로 인해 백년전쟁 기간 하코트 가문은 처음에는 잉글랜드 편에 섰고, 장 5세가 처형된 뒤에는 프랑스 진영으로 돌아섰습니다. 결국 이 성은 잉글랜드와 프랑스가 격돌하는 무대가 되었으며, 1449년 성벽 일부가 파괴된 흔적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잉글랜드군의 손에서 성을 탈환한 직후, 장 7세(Jean VII)는 남계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납니다. 이후 성은 혼인을 통해 로렌 가문(Lorraine)의 손에 넘어가며 로렌 공국에 귀속됩니다. 1695년, 로렌 공작의 아내였던 프랑수아즈 드 브랑카스(Françoise de Brancas)가 샤토 다르쿠르를 상속받았습니다.
마담 드 마트농의 측근이 이룩한 성의 변신
프랑수아즈 드 브랑카스는 베르사유 궁정의 저명한 인물이자 마담 드 마트농(Madame de Maintenon)의 측근에 속한 고위 귀족이었습니다. 그녀는 낡은 요새 성을 17세기 고전주의 취향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저택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개축에 나섭니다. 해자를 메우고 동쪽 성벽을 헐어 직사각형 테라스를 조성했으며, 테라스 아래 큰 화단은 하코트 공녀가 조성한 프랑스식 정원과 어우러지도록 설계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녀는 또한 석회석으로 동쪽 파사드를 새롭게 디자인하고, 일부 방에는 베르사유식 쪽모이 마루를 깔았습니다. 넓은 연철 계단과 통풍을 위한 커다란 창문이 더해지며 오래된 성에 숨통을 틔웠습니다. 프랑수아즈 드 브랑카스는 성에 두 개의 얼굴을 부여했습니다. 동쪽의 중세 흔적은 지워내고, 서쪽의 봉건 시대 면모는 그대로 보존한 것입니다. 가구가 갖춰지지 않은 성 내부는 17세기 말 개축 덕분에 오늘날까지 고전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편 1층에는 14세기에 만들어진 화장실과 쓰레기 처리 시설이 여전히 남아 있어 흥미를 더합니다.
18세기에 들어 성은 산발적으로 사람이 머무는 수준으로 방치되었고, 정원도 황폐해졌습니다. 1802년, 변호사이자 수목 재배학자였던 루이제르베 들라마르(Louis-Gervais Delamare)는 나무 재배 실험을 위해 담보로 잡혀 있던 이 성을 매입합니다.
하코트 수목원, 유럽 수목 재배의 요람
19세기 초, 이 분야의 선구자였던 루이제르베 들라마르는 하코트에 처음으로 활엽수를 심으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이후 그는 낙엽송, 가문비나무, 웨이머스소나무 같은 침엽수 심기로 방향을 전환했고, 놀라운 실험 결과는 그를 다양성에 기반한 재배로 이끌었습니다.
1827년 세상을 떠나기 전 그는 인본주의적·조림학적 유언에 따라 도멘 다르쿠르를 왕립농업협회에 기증하며, 자신의 실험을 계속하고 널리 알릴 것을 당부했습니다. 이후 여러 관리인들이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모리스 드 빌모랭(Maurice de Vilmorin)은 유럽 활엽수를 찾아 여러 대륙을 누비며 미지의 수종들—더글러스전나무, 은행나무, 비틀린 너도밤나무, 코르크참나무 등—을 들여왔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프랑수아앙드레 미쇼(François André Michaux)가 1833년 수목원을 조성했습니다. 1975년에는 재조림에 적합한 수종만을 수용하는 '정착 수목원'이 만들어졌는데, 각 수종은 체리나무, 서비스나무, 단풍나무 등 25~30개체씩 묶음으로 심어집니다.
1999년, 프랑스 농업 아카데미는 도멘 다르쿠르를 외르(Eure) 주에 기증했습니다. 이후 외르 주는 성의 관리·유지·활용을 맡아왔으며, 특히 경작지의 차별화된 관리를 통해 토지를 정화하고 새로운 야생 식물이 자라날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이 수목원은 과학적·기록적·교육적·미학적 가치까지 두루 지닌 공간으로 평가받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발굴 조사
보존 및 가치 향상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외르 주의회(General Council of Eure)는 앞마당 북쪽 출입문, 해자, 목구조물과 성의 목공예품을 발굴·복원하는 광범위한 사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발굴 작업을 통해 성 안의 생활상과 건축 변천에 따른 공간 활용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끊임없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도멘 다르쿠르 관람 안내
Domaine d'Harcourt
13 rue du Château(캐슬 스트리트 13번)
27800 Harcourt
개관 기간: 3월 1일 ~ 11월 15일
연중 가이드 투어, 워크숍, 테마 데이 등 다양한 행사 개최
자세한 정보: www.harcourt-normandie.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