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에 자리한 중세 도시 카르카손은 성, 탑, 그리고 이중으로 둘러싸인 웅장한 성벽을 갖춘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요새 도시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이 도시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세기 중반부터 건축가 외젠 비올레 르 뒤크(Eugène Viollet-le-Duc)가 이끈 전례 없는 복원 사업 덕분입니다.
카르카손, 번영에서 쇠퇴까지
철기 시대의 오피둠(oppidum, 요새화된 취락)에서 로마 식민지로 변모한 카르카손은 인근 나르본과 마찬가지로 번성하는 무역 덕분에 큰 번영을 누렸습니다. 민족과 문명이 교차하는 요충지에 위치한 카르카손은 서고트족(셉티마니아), 이슬람 세력(스페인의 우마이야 왕조)이 차례로 지배하다가 8세기 말 프랑크족의 영향권에 들어갔습니다. 중세 시대에는 프랑스-아라곤 국경의 전략적 요새로서 지속적인 요새화 작업이 진행되었으며, 특히 루이 9세(성왕)가 이 지역을 프랑스 왕국에 통합하면서 그 위상이 더욱 공고해졌습니다.
그러나 거의 외침이나 포위를 겪지 않았던 카르카손은 피레네 조약 체결 이후 점차 전략적 중요성을 잃어갔습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 루시용으로 이동하면서 요새 도시의 존재 이유가 흐려진 것입니다. 주민들은 낮은 지대의 신시가지로 하나둘 떠나갔고, 요새 도시는 서서히 버려졌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 카르카손은 낙후되고 고립된 동네로 전락했습니다. 지붕은 낡아 무너져가고, 벽에는 금이 가며, 심지어 성벽은 주민들의 채석장처럼 사용되었습니다. 1802년에는 교회가 대성당 지위를 잃고, 그 명칭은 하부 도시에 위치한 생미셸 대성당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카르카손의 복원
카르카손을 구하기 위해 온 힘을 쏟은 인물은 지역 학자 장피에르 크로마이르비예(Jean-Pierre Cros-Mayrevieille)였습니다. 그의 노력으로 1840년 생나제르 대성당이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당시 역사 기념물 감찰관이었던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érimée)의 방문을 계기로 1843년 건축가 외젠 비올레 르 뒤크에게 복원이 의뢰됩니다. 비올레 르 뒤크가 1844년 처음 카르카손에 발을 들인 것도 생나제르 대성당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는 석공, 유리공, 조각가로 구성된 작업팀과 함께 복원에 착수했으며, 현장 감독은 카르카손 출신 기라우드 칼스(Guiraud Cals)가 맡았습니다. 비올레 르 뒤크는 1년에 한 번씩 현장을 방문해 지시를 내리고 다음 해 공사에 필요한 세부 지침을 남기는 방식으로 사업을 이끌었습니다. 서쪽 정면이 재건되었고, 스테인드글라스 창, 본당 기둥, 버팀벽과 합창석 벽의 벽돌이 개보수되었습니다. 이후 나르본 문, 생나제르 문, 성벽과 탑이 차례로 복원되었습니다.
비올레 르 뒤크는 생전에 큰 논쟁을 불러일 정도로 독자적인 복원 철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복원을 "단순히 보존하거나 수리, 재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완전한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선택은 때로 과감하고 위험하기까지 했습니다. 카르카손에서도 그는 원래의 기와 대신 슬레이트 지붕을 과감히 채용해 지붕의 실루엣을 강조하는 등 자신만의 미학을 적극적으로 적용했습니다.
참고문헌
- 카르카손: 역사와 건축(Carcassonne, histoire et architecture), 장피에르 파누이(Jean-Pierre Panouille) 지음, 에디시옹 우에스트프랑스, 2011.
- 카르카손의 도시(La Cité de Carcassonne), 외젠 비올레 르 뒤크(Eugène Viollet-le-Duc) 지음, 에디시옹 케언,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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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적인 요새 도시 카르카손(Historic Fortified City of Carcassonne) - 유네스코 세계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