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인은 유전적으로 안정되고 균질한 집단이었을까? 최근 고고유전학 연구는 정반대의 결론을 내놓았다. 로마를 이루었던 사람들의 유전적 유산은 12,000년에 걸쳐 두 번의 거대한 이주 물결, 즉 농경의 전파와 지중해 무역의 확장과 함께 크게 뒤바뀌어 왔다는 것이다.

최전성기의 고대 로마 제국은 지중해 전역을 아우르며 유럽, 근동, 북아프리카의 수천만 명의 삶을 품은 거대 세계였다. 그 중심 도시 로마는 고대 세계에서 최초로 인구 100만 명을 넘긴 도시이기도 했다. 이 규모는 약 1,500년 후 산업혁명의 서막이 열릴 때까지 유럽에서 다시 등장하지 않았다.
DNA로 읽어낸 12,000년의 로마사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등장하기 한참 전부터 로마 일대는 유럽과 지중해를 잇는 요충지이자 문화의 교차로였다. 문헌 기록은 풍부하지만 정작 이 지역 주민들의 유전적 혼합 양상에 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았다. 빈 대학교, 스탠퍼드 대학교, 사피엔차 로마 대학교 공동 연구진은 로마와 이탈리아 중부 29곳의 고고학 유적에서 출토된 127명의 DNA를 분석해 이 공백을 메웠다.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과 고고학적 맥락 추론을 통해 각 개인은 약 12,000년에 달하는 로마 선사·역사 시대의 시간축 위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되었다.
중석기~청동기 시대: 농업의 도래
기원전 10,000년 무렵 중석기 시대 로마 인구는 유전적 다양성이 매우 낮았다. 당시 DNA는 현대 로마인보다 이형접합도가 30% 낮았는데, 이는 각 유전자의 두 복제본이 자주 동일하다는 의미로 유전적 혼합이 드물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두 차례의 대규모 이주가 이 강한 균질성을 뒤흔든다.
첫 번째 전환은 기원전 7,000년 무렵 신석기 농경민이 중석기 수렵채집민을 대체하며 시작되었다. 이후 기원전 5,000년에서 3,000년 사이에는 주로 오늘날 터키와 이란 지역에서 온 농부들이 유입되며 인구 구성이 한층 풍부해졌다. 이 변화는 밀, 보리, 콩류, 양, 소 등 재배 작물과 가축이 이탈리아에 처음 전해진 시기와 정확히 겹친다.
청동기~로마 건국: 무역이 연 국경
두 번째 인구 전환은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2,900년에서 900년 사이에 일어났다. 자료가 부족해 범위는 다소 넓지만, 이 변화는 새로 개발된 전차와 항해술의 발전에 힘입어 지중해 주변 민족과의 교류가 활발해진 시기와 맞닿는다. 로마인들이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 즉 ‘우리의 바다’라 부른 바로 그 바다다. 결국 늦어도 기원전 900년, 전통적으로 기원전 753년으로 여겨지는 로마 건국 직전 무렵에는 철기 시대 인구에 이란 계통, 우크라이나 스텝, 북아프리카 출신 조상이 섞여 이미 현대 지중해 인구와 흡사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연구진은 논문에서 “선사시대 개인들과 달리 철기 시대 개인들은 유전적으로 현대 유럽·지중해 인구와 닮았고 다양한 기원을 보인다. 중앙 이탈리아가 새로운 무역·식민·분쟁 네트워크를 통해 먼 공동체들과 점점 더 촘촘히 연결되면서 나타난 결과다”라고 설명했다.
지중해 전역을 품은 제국
그러나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소박한 도시로 태어난 로마는 800년 후 서쪽으로는 브리튼, 남쪽으로는 북아프리카, 동쪽으로는 시리아·요르단·이라크까지 뻗은 제국의 중심이 되었다. 이 시기 주민들의 유전적 구성은 더욱 풍부하고 복잡해졌는데, 특히 동지중해 출신의 비중이 컸고 서쪽 출신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저자들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로마에 장기 정착한 동방 출신들의 흔적을 든다. 묘비명에 기록된 고향 출신지, 그리고 그리스·프리기아·시리아·이집트 신들을 모신 신전과 성소의 잦은 등장이 그 예다.
그렇다면 갈리아를 정복해 노예와 올리브유, 포도주를 실어 나르면서도 서쪽보다 동쪽에서의 유입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연구팀은 동지중해가 서쪽보다 인구 밀도가 높았고 아테네, 안티오키아, 알렉산드리아 같은 거대 도시가 존재했던 점이 고대에 동에서 서로 향하는 인구 흐름을 만들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유전체에 새겨진 끝없는 변화
이후 수백 년은 격동의 연속이었다. 제국이 동서로 분열되고, 질병과 전쟁이 로마 인구를 갈아 없앴으며, 잇따른 침략이 도시를 덮쳤다. 그 결과 동지중해와의 접촉은 줄고 유럽에서 들어오는 유전자 흐름은 늘었다. 주민의 혈통은 북유럽·서유럽 쪽으로 이동했고,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부흥과 통치는 중부·북부 유럽 혈통의 유입을 다시 한 번 몰고 왔다.
“고대 세계는 문화든 혈통이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었다”는 것이 이 연구의 주저자 중 한 명인 조너선 프리처드(Jonathan Pritchard)가 내린 결론이다. 그는 “인구 혈통이 단 몇 세기 만에 이토록 빠르게 진화한 사실에 놀랐다. 이는 로마의 정치적 동맹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그대로 반영한다”며 “심지어 고대에도 로마는 이미 여러 문화가 뒤섞인 용광로였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