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약 3,000년 전 프리기아인이 바위를 깎아 만든 신비의 도시, 미다스(야질리카야)

터키 에스키셰히르 지방에는 오늘날 야질리카야(Yazılıkaya), 즉 문자 그대로 '새겨진 바위'라 불리는 유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미다스의 도시'라고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유적이 훨씬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일반적으로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 사이 프리기아인들이 건설했다고 전해집니다.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도시'라고 불리지만, 이곳에는 집이나 주거지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당시의 종교적 중심지, 즉 대규모 성소(聖所)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만이 이곳의 특이한 점은 아닙니다.

약 3,000년 전 프리기아인이 바위를 깎아 만든 신비의 도시, 미다스(야질리카야)

프리기아인, 아나톨리아로 온 인도유럽계 민족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프리기아인은 원래 발칸반도 남부에 거주하던 고대 인도유럽계 민족이었습니다. 기원전 8세기경 그들은 아나톨리아로 이주하여 수도 고르디온(Gordio)을 세웠습니다. 훗날 알렉산더 대왕이 잘라낸 것으로 유명한 '고르디우스 매듭' 전설이 벌어진 곳이 바로 이곳입니다.

프리기아 문화는 그리스 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남겼습니다. 특히 음악과 신화 분야에서 두드러지는데, 대표적인 예가 '위대한 어머니'로 숭배되던 프리기아의 여신이 그리스와 로마에서 키벨레(Cybele) 여신으로 받아들여진 사례입니다.

미다스는 실존했는가? 이름인가, 칭호인가

프리기아 신화 속 가장 오래된 왕은 미다스입니다. 다만 이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는 부족하며, 우리에게 익숙한 미다스는 후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손이 닿는 모든 것이 금으로 변하는' 황금 손의 소유자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실존 인물의 흔적도 있습니다. 기원전 8세기 아시리아 자료에는 프리기아의 '미타(Mita)' 왕에 대한 언급이 등장하며, 기원전 709년 사르곤 2세의 동맹자였음을 보여주는 비문도 남아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역대 프리기아 왕들의 이름이 '미다스'와 '고르디아스'를 번갈아 사용했다는 점에서, 학자들은 이 이름들이 개인명이 아니라 왕을 지칭하는 칭호였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약 3,000년 전 프리기아인이 바위를 깎아 만든 신비의 도시, 미다스(야질리카야)

바위 깎아 만든 '미다스 무덤', 그러나 무덤이 아니었다?

프리기아인들은 수도 고르디온 건설과 거의 같은 시기에 야질리카야에 종교 중심지를 세웠습니다. 이곳에 동굴, 갱도, 계단이 이미 존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원래부터 신성한 장소였을 수도 있고, 새로 정착한 주민들이 신성함을 부여했을 수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프리기아인들이 이곳을 성소로 재단장하고 바위를 발파해 직접 새긴 새로운 건축물로 장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기념물은 '미다스 무덤(Midas Monument)'입니다. 높이 20m, 폭 16m의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든 정면부를 갖춘 이 구조물은, 역설적으로 무덤이었던 적이 없는 기념물입니다.

정면에는 벽감(壁龕) 또는 위장문(false door)이 조각되어 있는데, 그 뒤에 무언가 묻혀 있다고 믿은 약탈자들에 의해 일부 파괴되었습니다. 상단에는 오늘날에도 판독이 가능한 헌납 비문이 남아 있습니다. 고대 프리기아어로 쓰인 이 글은 '아르키아스의 아들 아테스가 미다스에게 바친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아래쪽 벽감 벽에는 '킬라(Kill)', 즉 '어머니'라는 작은 비문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인근에 조각된 키벨레 여신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약 3,000년 전 프리기아인이 바위를 깎아 만든 신비의 도시, 미다스(야질리카야)

비문 속 '미다스'가 어느 왕을 가리키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전설적인 미다스 왕은 고르디온 근처의 거대한 고분 아래 잠들어 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1990년대 진행된 발굴 결과, 이곳에서는 매장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수백 미터 떨어진 같은 암석 노두 위에 위치한 매우 유사한 다른 기념물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약 3,000년 전 프리기아인이 바위를 깎아 만든 신비의 도시, 미다스(야질리카야)

수백 개의 바위 계단, 그리고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

이 장소에서 가장 기묘한 광경은 아크로폴리스, 즉 '도시'의 최고 지점까지 이어지는 계단들입니다. 바위를 통째로 깎아 만든 수백 개의 계단이 늘어서 있지만, 일부는 막다른 골목에서 끝나고, 어떤 계단은 그냥 지하로 사라집니다. 곳곳에는 제단과 왕좌로 추정되는 석조물도 흩어져 있어, 이 모든 것이 종교 의식에서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의식용 통로였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서로 연결된 터널과 지하 방으로 이어집니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이곳을 물을 저장하던 저수조로 해석하지만, 한 번도 실제로 사용된 적이 없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공간은 수 세기에 걸쳐 쌓인 흙과 암석으로 막혀 있어 아직 발굴되지 못했습니다.

약 3,000년 전 프리기아인이 바위를 깎아 만든 신비의 도시, 미다스(야질리카야)

최근 수십 년간 터키에서 잇달아 발견된 수많은 지하 도시와의 관련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동시에 프리기아인들이 신은 산 속에 살며, 터널은 신의 세계로 향하는 통로라고 믿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약 3,000년 전 프리기아인이 바위를 깎아 만든 신비의 도시, 미다스(야질리카야)

발굴의 역사

야질리카야 유적 전체는 해발 1,315m에 위치하며, 계곡 바닥에서 약 70m 높이의 암반 꼭대기에 자리합니다. 19세기 후반 W. M. 램지(W. M. Ramsay)가 처음 발굴을 시작했으며, 그는 이 도시가 방어벽으로 둘러싸여 있음을 밝혀냈습니다.

한편 미다스 기념물 자체는 그보다 앞선 1800년 W. M. 리크(W. M. Leake) 대령에 의해 이미 기록되었습니다. 그는 일행과 함께 이스탄불에서 이집트로 여행하던 중 이 기념물을 조사하고 스케치했으며, 해당 그림은 1824년 출간된 그의 여행기에 수록되었습니다.

이후 1996년, 2001년, 2002년에 걸쳐 진행된 발굴에서는 바위 틈새 곳곳에 새겨진 수많은 신들의 형상이 추가로 발견되면서, 이 신비로운 바위 도시의 종교적 성격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하나둘 쌓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