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에트루리아어의 로제타석, 피르기 판 — 황금 비문에 담긴 신비 문명 해독의 열쇠

에트루리아어는 오늘날까지 완전히 해독되지 않은 고대 언어지만, 연구자들은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상당수 텍스트를 읽고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해진 결정적 계기는 바로 피르기 판(Pyrgi Tablets)입니다. 페니키아어로 새겨진 세 개의 금판과 에트루리아어로 새겨진 두 개의 금판은 서로 일정한 대응 관계를 이루고 있어, 이집트의 로제타석처럼 언어 해독의 열쇠가 되었습니다.

피르기 판의 발견: 1964년, 에트루리아 항구 도시의 성소에서

피르기 판은 1964년 7월 8일, 에트루리아 도시 카이레(Caere, 오늘날 라치오 북부 체르베테리)의 항구였던 피르기(Pirgi)의 성소에서 발굴되었습니다. 피르기는 기원전 6세기부터 4세기까지 지중해에서 가장 중요한 상업 항구 중 하나로 번영했으며, 금판이 제작된 시기는 기원전 500년경으로 추정됩니다.

이 유물은 현대 에트루리아학(Etruscology)의 창시자인 마시모 팔로티노(Massimo Pallottino)가 감독한 아스타르테 신전 발굴 과정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며, 그의 학문적 경력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세 금판 모두 가장자리에 구멍이 뚫려 있어 원래 어떤 형태로든 서로 결합되어 있었을 것으로 보이며, 각각 높이 20센티미터, 너비 10센티미터의 크기입니다.

에트루리아어의 로제타석, 피르기 판 — 황금 비문에 담긴 신비 문명 해독의 열쇠

금판에 새겨진 내용: 여신에게 바치는 봉헌문

고고학적 유물로서의 가치를 넘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금판에 새겨진 내용입니다. 두 개의 에트루리아어 텍스트와 하나의 페니키아어 텍스트는 모두 신전 봉헌과 관련된 기록입니다. 페니키아어 비문에는 여신 아스타르테(Astarte)에게 봉헌되었다고 명시되어 있는데, 에트루리아어에서는 이 여신을 유니(Uni)라고 불렀습니다. 더욱 주목할 점은 봉헌을 집행한 도시의 최고 행정관, 즉 왕의 이름인 테파리 벨리아나스(Thefari Velianas)가 함께 새겨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완벽한 번역본은 아니지만, 해독의 출발점이 되다

다만 피르기 판의 텍스트들이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집트 상형문자 해독의 로제타석처럼 정확한 병기 번역문이라기보다는 약간의 차이를 지닌 기록입니다. 페니키아어 텍스트는 봉헌의 이유를 설명하고 있고, 두 에트루리아어 텍스트 중 하나는 의식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며, 거의 9줄 분량인 마지막 텍스트는 봉헌의 요약을 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연구자들은 페니키아어 버전을 단서 삼아 나머지 두 텍스트의 의미를 풀어낼 수 있었고, 신비의 언어라 불리던 에트루리아어를 처음으로 읽고 이해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 해독은 이후에도 끊임없는 발전과 새로운 발견을 낳으며 이어지고 있습니다.

에트루리아어의 로제타석, 피르기 판 — 황금 비문에 담긴 신비 문명 해독의 열쇠

해독의 토대가 된 멜카르트 키피(Melqart Cippi)

이러한 성과는 1694년 몰타에서 발견된 두 개의 받침돌, 멜카르트 키피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와 페니키아어(포에니어) 비문이 함께 새겨진 이 받침돌을 통해 장 자크 바르텔레미(Jean-Jacques Barthelemy)는 카르타고 알파벳을 해독하고 재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두 받침돌 중 하나는 몰타 수도의 고고학 박물관에서, 다른 하나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로마 이전 이탈리아 최고(最古)의 역사 자료

오늘날 피르기 판은 로마 이전 이탈리아의 가장 오래된 역사적 기록으로 평가받습니다. 인도유럽어족의 이주 이전부터 이미 현재의 투스카니 지역에 거주했던 에트루리아인들의 언어를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창이기 때문입니다. 에트루리아어를 읽을 줄 알았던 것으로 확실히 확인된 마지막 인물은 클라우디우스 황제로, 그는 당시까지도 에트루리아어를 사용하던 농민들을 직접 인터뷰하여 사전을 편찬했다고 전해집니다. 안타깝게도 이 사전은 유실되었고, 오늘날 알려진 에트루리아 비문 대부분은 『코푸스 인스크립티오눔 에트루스카룸(Corpus Inscriptionum Etruscarum)』에 수집되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피르기 판은 에트루리아와 카르타고(페니키아인이 건국)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문서이기도 합니다. 두 세력은 서부 지중해에서 그리스 세력의 확장에 맞선 동맹 관계였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현재 피르기 판은 로마 국립 에트루리아 박물관(빌라 줄리아 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