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103년, 트라야누스 황제는 데케발루스와의 제2차 다키아 전쟁을 앞두고 15만 대군을 도나우 강 너머로 이동시키고 보급하기 위해 강 위에 거대한 다리의 건설을 명령했습니다.
이 다리를 설계하고 시공한 인물은 다마스커스 출신의 건축가 아폴로도로스였습니다. 판테온을 비롯해 목욕탕, 포럼, 시장, 트라야누스 원주 등 로마의 대표 건축물들을 남긴 그는 당시 황제가 가장 신뢰하던 건축가였습니다.
다리는 현대 루마니아의 드로베타-투르누 세베린 마을 근처, 세르비아 국경과 평행하게 흐르는 도나우 강의 자연 협곡 '철문(Iron Gates)' 동쪽에 세워졌습니다. 공사는 서기 105년에 완공되었으며, 고대 최고 수준의 토목 공학 작품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다리의 규모는 전장 1,135m, 폭 14.55m, 수면 위 높이 18.60m에 달했습니다. 오늘날 이 구간의 강 폭이 약 800m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웅장함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다리는 벽돌과 모르타르, 포졸란 시멘트로 만든 20개의 석조 교각 위에 세워졌으며, 약 50m 간격으로 참나무 목재 아치가 이어지는 분할 아치 구조였습니다.
공사에 사용된 벽돌 일부가 실제로 발견되었는데, 벽돌 쌓기에 동원된 병사들이 소속 부대의 이름을 직접 새겨 넣어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큽니다.

이러한 유물을 통해 제4 '플라비아 펠릭스' 군단(IV Flavia Felix), 제7 '클라우디아' 군단(VII Claudia), 제5 '마케도니카' 군단(V Macedónica), 제13 '게미나' 군단(XIII Gémina)과 크레타 제1(I Cretum), 히스파니아 제2(II Hispanorum), 브리튼 제3(III Britorum), 안티오키아 제1(I Antiochensium) 보조 부대가 다리 건설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리 양쪽 끝에는 두 개의 독립된 카스트라(요새화된 진영, 단수형 카스트룸)이 자리하고 있어, 다리를 건너려면 반드시 요새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그 잔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리의 모습은 고전 사료, 특히 디오 카시우스의 『로마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다리의 기술적 특징을 상세히 기술했으며, 로마에 세워진 트라야누스 원주의 부조에도 다리의 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세르비아와 루마니아 양안에서 다리로 이어지던 아치형 아케이드의 유적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다리가 실제로 사용된 기간은 수십 년에 불과했지만, 이후 무려 1,000년 이상 세계에서 가장 긴 아치교로서의 기록을 유지했습니다. 정확한 시기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야만족의 도나우 강 도하를 막기 위해 상부 구조물의 철거를 명령했다는 증거가 남아 있습니다.

일부 역사가들은 이것이 일시적인 조치에 불과했으며, 디오클레티아누스와 콘스탄티누스 황제 통치기에 다리가 다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다만 비잔틴 시대의 작가 프로코피우스는 자신이 살던 6세기경에 이미 다리가 폐허가 되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교각들은 1858년 대가뭄으로 강의 수위가 전례 없이 낮아지면서 오랜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1906년에는 항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두 개의 교각이 철거되었습니다. 1932년에는 16개의 교각이 남아 있었지만, 1982년에는 12개만 확인되었는데, 나머지는 강한 물살에 의해 유실된 것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