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9,000년 전, 세계 최초의 대규모 농경 공동체 중 하나인 차탈회유크(Çatalhöyük)의 주민들은 현대 도시 생활의 위험 요소를 가장 먼저 경험한 인류였습니다.
현재 터키에 위치한 차탈회유크 유적을 연구한 과학자들은, 절정기에 3,500명에서 8,000명에 달했던 이곳 주민들이 과밀화, 감염병, 폭력, 환경 문제로 고통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2019년 6월 17일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에 게재된 논문에서 국제 생물고고학자 팀은 차탈회유크에서 발굴된 인골에 대한 25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발견들을 상세히 소개했습니다.

수렵·채집에서 농경 정착 생활로
연구의 제1저자이자 오하이오주립대학교 인류학 교수인 클라크 스펜서 라르센(Clark Spencer Larsen)에 따르면, 이번 연구 결과는 인류가 유목적 수렵·채집 생활에서 농업 중심의 정착 생활로 전환하는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라르센은 "차탈회유크는 세계 최초의 원도시(proto-urban) 공동체 중 하나였으며, 주민들은 많은 사람이 좁은 지역에 오랫동안 함께 모여 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차탈회유크는 현재 터키 남중부 지역에 해당하며, 기원전 약 7100년부터 5950년까지 사람이 거주했습니다. 1958년 처음 발굴된 이 유적지는 13헥타르 규모를 차지하고 있으며, 1,150년간의 연속 거주를 보여주는 두께 약 21미터의 퇴적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곳은 기원전 7100년경 소수의 진흙 벽돌 주택으로 이루어진 작은 정착지로 시작되었으며, 연구자들은 이 시기를 '초기'라고 부릅니다. 이후 기원전 6700년부터 6500년 사이인 '중기'에 절정기를 맞았고, '후기'에는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다가 결국 기원전 5950년경 완전히 버려졌습니다.

곡물 위주 식단이 낳은 '문명의 질병'
농업은 언제나 이 공동체 삶의 핵심이었습니다. 연구진은 뼈 속 화학적 증거를 분석한 결과, 주민들이 밀, 보리, 호밀을 기반으로 다양한 재배되지 않은 식물을 곁들인 식단을 섭취했음을 확인했습니다. 단백질은 양, 염소 및 야생 동물에서 공급되었으며, 가축화된 소는 후기에 도입되었고 양이 식단에서 가장 중요한 동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곡물 위주의 식단 탓에 일부 주민들은 충치가 빠르게 생겼는데, 라르센에 따르면 이른바 '문명의 질병' 중 하나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적지에서 발견된 성인 치아의 10~13%에서 충치 흔적이 나타났습니다.
흥미롭게도 다리뼈 단면 모양의 시기별 변화를 분석한 결과, 차탈회유크 후기 공동체 구성원들이 초기 주민들보다 훨씬 더 많이 걸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농사와 목축이 공동체에서 점점 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합니다.
라르센은 "환경 악화와 기후 변화로 인해 공동체 구성원들이 농사를 짓고 장작 같은 자원을 구하기 위해 정착지를 벗어나야 했다"며, "이것이 차탈회유크의 궁극적인 몰락에 일조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과밀화가 초래한 감염병과 폭력
새로운 연구 결과는 주민들이 높은 감염률로 고통받았음을 보여주며, 이는 아마도 과밀화와 열악한 위생 상태 때문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초기 유골의 최대 3분의 1에서 뼈 감염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인구가 절정에 달했을 때 집들은 서로 틈 없이 빽빽하게 지어졌고, 계단을 통해 지붕으로 출입하는 독특한 구조였습니다. 발굴 조사에 따르면 내부 벽과 바닥은 진흙으로 반복적으로 마감되었습니다. 주민들이 대체로 바닥을 깨끗하게 유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의 벽과 바닥 분석 결과 동물과 사람의 배설물 흔적이 검출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차탈회유크의 혼잡한 환경이 주민들 간의 높은 폭력 수준에도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조사된 93개 두개골 중 4분의 1이 넘는 25개체에서 치유된 골절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그중 12명은 한 번 이상 피해를 입었으며, 짧은 기간에 2~5회의 부상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병변의 형태는 딱딱하고 둥근 물체, 즉 유적지에서도 발견된 진흙 공에 의한 머리 타격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합니다.
피해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여성 13명, 남성 10명)이었으며, 대부분의 부상은 머리 정수리나 뒤통수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는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마주하지 않은 상태에서 공격당했음을 의미합니다.
라르센은 "인구가 더 많고 밀도가 높았던 중기에 두부 부상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같은 집 아래 묻혔지만, 혈연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집 바닥에 파낸 구덩이에 매장되었으며, 연구자들은 그들이 실제로 생전에 살던 집 바로 아래에 안장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발견이 이루어졌습니다. 같은 가구의 구성원 대부분이 서로 혈연 관계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연구자들은 같은 집 아래에 묻힌 개인들의 치아가 친척이라면 예상되는 수준만큼 유사하지 않다는 점을 통해 이를 확인했습니다. 라르센은 "혈연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치아 교두에서 유사한 변이를 보이는데, 같은 집에 묻힌 사람들에게서는 그러한 유사성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어떤 관계로 함께 살았던 것일까요? 현재로서는 이들 간의 관계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