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신석기 시대 스위스 농부들은 이미 5000년 전부터 아편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었다

아편 양귀비는 기원전 6천 년기, 무려 5000년이 넘는 시간 전부터 스위스 알프스 산기슭에서 자라며 꽃을 피운 것으로 밝혀졌다.

신석기 시대 스위스 농부들은 이미 5000년 전부터 아편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었다

아편 양귀비의 꽃과 열매삭.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스위스 산속에서 핀 양귀비

아편 양귀비(Papaver somniferum L.) 재배를 떠올릴 때 많은 사람들은 아프가니스탄의 광활한 평원 곳곳에 펼쳐진 알록달록한 꽃밭의 풍경을 먼저 그려낸다. 하지만 세계 헤로인 공급의 주원료인 이 식물이 5000년도 더 전부터 스위스의 산악 사면에서 만개했다는 사실은 의외일 것이다. 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츠(Scientific Reports)에 게재된 새로운 고고학적 종자 분석 연구는 아편 양귀비의 가축화 과정과 신석기 시대 알프스 지역으로의 초기 확산 경로를 조명하고 있다.

“지중해 서쪽에서 가축화된 유일한 식물”

“통념과 달리 가장 오래된 양귀비 씨앗은 남서아시아가 아니라 프랑스 남부, 이탈리아, 이베리아 반도 등 서지중해 지역의 고고학 유적에서 발견됩니다. 기원전 6천 년기의 고고학 기록에는 이미 Papaver somniferum/setigerum 씨앗이 보고됩니다.” 프랑스 몽펠리에 진화과학연구소(Institute of Evolutionary Sciences)의 고고식물학자 로랑 부비(Laurent Bouby)가 설명했다. “양귀비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 바깥, 즉 지중해 서쪽에서 가축화된 것으로 알려진 유일한 식물입니다. 곡물·콩류·아마 등 다른 작물들이 모두 중동에서 가축화된 것과는 대조적이죠. 양귀비는 식량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정신 활성 작용을 활용한 치료 목적으로도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를 입증하기는 상대적으로 어렵습니다.”

아편 양귀비는 유럽 신석기 시대 초기부터 등장했으며, 그 조상격인 Papaver somniferum subsp. setigerum은 오늘날까지도 서지중해 지역에서 야생으로 자라고 있다.

신석기 시대 스위스 농부들은 이미 5000년 전부터 아편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었다

아편 양귀비의 꽃과 열매삭. © Raul Soteras, AgriChange 프로젝트.

기원전 6천 년기부터 알프스에서 재배된 아편 양귀비

바젤 대학교(스위스)와 몽펠리에 대학교,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MNHN) 소속 연구진은 새로운 분석 기법을 통해 알프스 지역의 선사시대 농부들이 늦어도 기원전 4300년경부터 아편 양귀비를 대규모로 재배하고 이용하기 시작했음을 확인했다. 이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P. somniferum 씨앗이 스위스 발레(Valais) 지역에서 실제로 출토되었으며, 호수 유적지에서 다량 회수된 종자 파편들은 당시 이미 널리 퍼져 있던 재배 문화를 방증한다.

“알프스 호수 유적지는 특히 탄화되지 않아 변형이 적은 식물 유체가 놀랄 만큼 잘 보존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런 유적에서 출토된 재배종 양귀비 씨앗과 야생종 양귀비 씨앗을 구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라고 부비는 덧붙였다.

신석기 시대 스위스 농부들은 이미 5000년 전부터 아편 양귀비를 재배하고 있었다

취리히 오페라 파크하우스(Opera Parkhaus) 고고학 유적에서 출토된 아편 양귀비 씨앗. © Raul Soteras, AgriChange 프로젝트.

씨앗의 모양으로 읽어내는 가축화의 역사

연구진은 기하형태계측법(geometric morphometry), 즉 씨앗의 윤곽선을 정량적으로 분석해 크기와 형태 차이를 비교하는 기법으로 이 난제를 해결했다. “바젤 대학교와 파리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한 현대 종자 표본에 이 기술을 시험 적용한 결과, 재배종과 야생종 사이의 미세한 차이가 드러났습니다.”라고 전문가는 말했다. 이 방법을 스위스 신석기 시대 거주지 유적에서 수집한 고고학 종자에 적용한 결과, 조사 대상의 약 절반은 야생 형태였고 나머지 절반은 이미 가축화된 형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지중해가 원산지인 아편 양귀비는 이후 매우 빠르게 확산해 북유럽 일대, 즉 독일 서부, 벨기에, 프랑스 동부, 파리 분지까지 퍼져 나갔다. 이번 연구를 이끈 국제 공동 연구팀은 향후 유전학 연구와 병행하여 아편 양귀비 가축화의 전 과정을 재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