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히스기야 터널(실로암 터널): 기원전 8세기 예루살렘의 고대 수로, 현재도 탐방 가능

개요

예루살렘 다윗 성 아래를 지나는 히스기야 터널(Hezekiah's Tunnel)은 실로암 터널(Siloam Tunnel)로도 불립니다. 내부에서 발견된 '실로암 비문'이 터널 개통 과정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터널은 열왕기하 20장 20절에 히스기야 왕이 앗시리아의 포위 공격에 대비해 예루살렘 성내로 식수를 끌어오기 위해 판 수로로 언급되며, 현재 일반인이 직접 걸어서 탐방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터널 중 하나로 꼽힙니다.

축조 연대와 역사적 배경

터널 벽면의 원래 회반죽에서 나온 유기물을 분석한 결과, 성경 기록이 가리키는 기원전 701년경이라는 연대가 뒷받침되었습니다. 다만 2011년 새로운 발굴 조사는 이 터널이 기원전 9세기 말 또는 8세기 초에 이미 존재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 구조물이 기원전 8세기 후반, 시리아와 서안 지구에서 신이집트 왕국으로 진군하던 앗시리아 군대의 포위(기원전 701년)에 대비해 예루살렘에 식수를 공급하고자 계획된 방어 시설의 일환이었다는 점입니다.

구조와 축조 과정의 미스터리

터널은 연중 물이 마르지 않는 유일한 수원인 기혼 샘(Gihon Spring)에서 시작합니다. 이 샘은 시온 산 동쪽 비탈의 동굴에서 솟으며, 이미 성벽에 포함된 방어탑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습니다. 수로는 여부스 샘(Jebusite Spring) 방향(다윗 왕 시대에 이스라엘인들이 이 수로를 통해 성을 정복했다는 전승이 있음)을 따라 시온 산을 남남서 방향으로 관통하여, 성벽 안쪽의 실로암 연못(Siloam Pool)으로 이어집니다. 현재 보이는 연못은 비잔틴 시대 것이며, 그 내부에서 더 오래된 연못이 발굴되었습니다.

공사는 양쪽에서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한 팀은 기혼 샘에서, 다른 팀은 실로암 연못에서 굴착을 시작했습니다. 두 팀이 어떻게 정확하게 만나게 되었는지는 여전히 연구자들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일부 학자는 지표면에서 망치로 두드리거나 소리를 내어 굴착 방향을 유도했을 것이라 추측하지만, 터널 내부에서 여러 차례 방향을 수정한 흔적이 뚜렷하게 발견됩니다.

실로암 비문(Shiloah Inscription)

1884년, 연못 쪽 입구 근처 벽면에 박혀 있던 비석인 실로암 비문이 발견되었습니다(현재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소장). 이 비문은 두 팀이 불과 30미터 거리를 남겨둔 공사 막바지 단계를 기록하고 있어 고고학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안타깝게도 일부가 마모되어 판독이 불가능하며, 이 부분에 이스라엘인들이 사용한 측량·유도 시스템에 대한 추가 정보가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판독 가능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굴착이 끝났을 때, 굴착자들이 서로 마주 보며 도끼를 들고 돌을 치니, 물이 샘에서 연못까지 1,200규빗 흐르기 시작했고, 굴착자들의 머리 위 바위 두께는 100규빗이었다."

탐사 역사와 현대적 탐방

이 터널은 1625년 프란치스쿠스 콰레스미우스(Franciscus Quaresmius)에 의해 처음 문헌에 기록되었고, 1838년 성서 학자 에드워드 로빈슨(Edward Robinson)과 1865년 찰스 워렌(Charles Warren)에 의해 탐사되었습니다. 워렌은 이 터널이 히스기야 왕 때 축조되었을 것이라 제안했고, 19년 뒤 비문 발견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터널의 총 길이는 533미터이며, 양 끝의 고도 차이는 불과 30센티미터로, 중력만으로 물을 성내로 끌어들이기에 충분한 정교한 기울기를 자랑합니다. 현재 기혼 샘 지역과 실로암 연못까지 이어진 터널 전 구간은 관광객과 고고학 애호가들이 랜턴을 들고 무릎 높이의 물속을 걸으며 탐방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습니다.

청동기 시대의 또 다른 수로 발견

1899년, 기혼 샘과 실로암 연못 주변을 연결하는 또 다른 지하 수로가 발견되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이 수로가 기원전 1800년경 청동기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히스기야 왕 시대보다 훨씬 이전부터 기혼 샘의 물이 이용되었음을 입증하는 자료라고 판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