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알렉산드리아 폼페이우스 기둥,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전' 세라페움에 남은 마지막 유적

그리스와 이집트가 만난 신, 세라피스

세라피스(Serapis)는 기원전 7~6세기경 멤피스에서 그리스 용병 프삼메티쿠스(Psammetichus)와 아마시스(Amasis)의 후손들 사이에서 탄생한 그리스·이집트 혼합신입니다. 이집트의 오시리스(Osiris)와 아피스(Apis) 신앙이 융합된 형태로, 그리스인들은 이를 제우스(Zeus) 및 하데스(Hades)와 동일시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세라피스를 알렉산드리아의 수호신으로 삼고, 기원전 300년경 도시 남서쪽 끝 라코티스(Racotis) 아크로폴리스에 최초의 신전, 즉 세라페움(Serapeum)을 세웠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폼페이우스 기둥,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전  세라페움에 남은 마지막 유적

스트라보가 기록한 신전의 위치

기원전 1세기 지리학자 스트라보(Strabo)는 당시 도시의 중심지가 아우구스투스가 조성한 니코폴리스(Nicopolis) 지역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세라페움이 서 있던 자리는 매우 낙후된 상태였다고 기록했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 가장 웅장한 성역으로 재건하다

원래의 신전은 181년 화재로 파괴되었고,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181년에서 217년 사이에 걸쳐 이를 확장·장식하여 거대한 성역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재건된 세라페움은 알렉산드리아의 모든 그리스 신전 중 가장 크고 웅장했으며, 일부 학자들은 당대 건설된 모든 그리스 신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꼽기도 합니다. 동부 지중해 전역을 통틀어 손꼽히는 성역이었던 셈입니다. 특히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의 화재에서도 살아남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소장본 일부가 이 성역 안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100개의 계단과 대리석, 금과 은으로 빛나던 성소

알렉산드리아 아크로폴리스에 자리한 이 성역은 100개의 계단을 통해 오를 수 있었습니다. 성소 건물은 모두 대리석으로 덮여 있었고, 신전 내부에는 금·은 등 귀금속 판이 둘러져 있었다고 전합니다.

기독교와 이교도의 충돌, 그리고 파괴

세라페움은 서기 325년 7월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문을 닫았지만, 이후 다시 열린 것으로 보이며 기록에 따르면 서기 370~390년 무렵까지 명맥을 유지했습니다. 이곳은 이교도 순례의 핵심 성지였고, 철학자들은 성역 내에 마련된 교실에서 계속 강의를 이어갔습니다.

당대 로마 제국의 역사를 저술한 아미아노 마르셀리노(Amiano Marcelino) 역시 저서에서 세라페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전환점은 서기 391년 찾아왔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주교 테오필루스(Theophilus)는 거리 행진 중 발견한 미트라교 숭배 물품들을 행렬로 끌고 나가, 기독교인들이 이를 조롱하도록 했습니다. 분노한 이교도들은 가만히 앉아만 있지 않았고, 많은 사상자를 내는 일련의 폭동 끝에 스스로 '정의'를 집행하려 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폼페이우스 기둥,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전  세라페움에 남은 마지막 유적

기독교 측의 반응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이교도들이 성역 경내로 피신했지만, 수적으로 크게 열세였던 그들을 기독교인들이 공격했고, 결국 신전과 도서관의 마지막 잔존 부분은 완전히 파괴되어 다시는 재건되지 못했습니다.

파괴 현장을 직접 목격한 기독교 작가이자 주석가인 아퀼레이아의 루피누스(Rufinus)는 당시 세라페움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폼페이우스 기둥,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전  세라페움에 남은 마지막 유적

브리락시스의 걸작, 산산조각 난 세라피스상

루피누스가 언급한 세라피스상은 약 600년 전 세라페움이 설립될 당시 유명 그리스 조각가 브리락시스(Bryaxis)가 금·대리석·상아로 제작한 거대한 신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조각상은 산산조각 났고, 파편들은 파괴하기 위해 도시 곳곳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두 번의 파괴를 견딘 자리, 그리고 마지막 하나의 기둥

세라페움 터에는 이후 수도원이 세워지고 산후안 바우티스타 교회가 들어섰습니다. 10세기에는 이슬람 세력이 그곳에 묘지를 조성하면서 성역 전체가 두 번째 파괴의 물결을 겪었고, 12세기에는 주랑의 일부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 방대한 유산 가운데 오늘날까지 남은 것은 바로 이른바 '폼페이우스의 기둥(Pompey's Pillar)' 하나뿐입니다. 서기 315년경 이곳을 방문한 그리스 수사학자 아프토니우스(Aphthonius)는 여전히 서 있는 신전을 목격했으며, 기둥이 세라페움의 가장 높은 지점에 서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폼페이우스 기둥,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전  세라페움에 남은 마지막 유적

디오클레티아누스를 기리며 세워진 기념주

이 기둥은 서기 298~302년 사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성역 동쪽 신전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높이는 26.85m에 달하며, 원래는 코린트식 수도 꼭대기에 7m 높이의 황제 동상이 올려져 왕관처럼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 동상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18세기 기둥 기슭에서 조각들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허벅지 부분으로 추정되는 1.6m 길이의 파편 하나가 동상 전체 높이를 계산하는 데 사용되었는데, 이 파편들은 현재 모두 행방이 묘연하지만 일부는 유럽과 미국의 개인 소장품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집트 유일의 단일석 기둥, 285톤의 위용

이 기둥은 이집트에 남은 고대 기둥 중 유일하게 축(샤프트)이 드럼이 아닌 단일 석재로 만들어진 사례로, 무게가 285톤에 달하는 그리스·로마 시대 단일석 중 가장 크고 무거운 것 중 하나입니다.

기둥 몸체는 아스완 채석장에서 채석한 분홍빛 화강암(청금석)으로 만들어졌으며, 길이는 20.46m, 바닥 지름은 2.71m입니다. 기둥이 서 있는 주각의 높이는 6m이고, 코린트식 수도는 회색 화강암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폼페이우스 기둥,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전  세라페움에 남은 마지막 유적

헌정 비문과 '폼페이우스'라는 이름의 유래

주각에는 디오클레티아누스를 polioúchos(도시의 수호신)로 정의하는 헌정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스어 네 줄 비문에는 praefectus Aegypti(이집트 총독) 푸블리우스(Publius)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방문 혹은 이집트 원정을 기념하기 위해 이 기념물을 헌정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푸블리우스'라는 이름의 그리스어 철자가 혼동을 낳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십자군들은 이 기둥을 기원전 48년 프톨레마이오스 13세의 손에 죽은 로마 공화파 장군 폼페이우스가 묻힌 장소로 믿었고, 어쨌든 오늘날에도 이 기둥은 폼페이우스의 기둥이라 불립니다.

아일랜드에 서 있는 '쌍둥이' 기둥

흥미로운 사실도 있습니다. 아일랜드 캐리가다간 힐(Carrigadaggan Hill) 마을에는 1839~1841년 사이 건설된 이 기둥의 복제품이 서 있는데, 내부 계단을 통해 수도 꼭대기까지 28.75m를 오를 수 있습니다. 로버트 브라운-클레이튼(Robert Browne-Clayton) 장군이 전투에서 전사했다고 알린 아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인데, 불운(이 경우에는 다행스러운 불운) 덕분에 공사가 끝나자마자 그의 아들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