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1세기 말부터 미트라 숭배는 로마 제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인도·페르시아 계통의 기원을 지닌 이 신은 일종의 신비 종교를 이루었고, 신자들은 정직·순결·용기를 핵심 덕목으로 삼아 조직된 비밀 결사를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특히 군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서기 4세기까지는 기독교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제국의 주요 종교로 자리 잡기 위해 경쟁했습니다.
같은 이름의 조로아스터교 신격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그리스·로마 세계의 미트라는 처음부터 태양신 헬리오스와 동일시되는 혼합적 신격이었습니다. 그의 신도들은 7단계로 구성된 입문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공동 식사 의식을 거행하는 전통을 지녔습니다.
신자들은 미트라에움(Mithraeum)이라 불리는 지하 신전에서 만났습니다. 이 중 상당수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으며, 로마 시내에만 약 600곳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일부는 산 클레멘테 대성당 발굴 과정에서 발견된 것처럼 다른 건축물 아래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천연 동굴 그 자체를 신전으로 사용한 미트라에움은 단 한 곳뿐입니다. 바로 슬로베니아 국경과 맞닿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현의 도시, 두이노(Duino)에 위치한 미트라에움입니다. 이곳은 1963년 도시 북북서쪽에서 동굴 탐험가들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미트라교에서 중요한 정화 의식의 매개였던 물이 흐르는 티마보 강의 수원지 근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일대에는 과거 '폰스 티마비(Pons Timavi)'라 불린 로마 정착지가 들어서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
동굴은 내부 조명이 가능할 만큼 넓은 입구를 갖추고 있습니다. 중앙에는 석회암 블록을 깎아 만든 제단과 좌우 두 개의 벤치가 놓여 있고, 벽면에는 미트라 신이 황소를 찌르는 모습이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른바 타우로크토니(Tauroctony), 즉 황소 살해 장면은 이 신격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도상학입니다.
제단에는 다음과 같은 봉헌 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D(eo) I(nvicto) M(ithrae) AV(lus) TULLIVS PAVMNIANVS PRO SAL(ute) ET FRATER SVOR(um) TVLLI SECUNDI ET TVLLI SEVERINI
(‘무적의 신 미트라스께, 아울루스 툴리우스 파우므니아누스가 자신과 형제 툴리우스 세쿤두스, 툴리우스 세베리누스의 안녕을 위해 바칩니다’)
동굴 내부에서는 서기 2~4세기에 주조된 고대 동전 400여 점이 출토되었으며, 이 밖에 등잔, 수많은 도자기 그릇, 암포라(양손 항아리) 파편, 기와, 속이 빈 기와 등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신전은 서기 1세기 후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서기 391년경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칙령으로 이교 숭배가 금지될 때까지 약 300년간 사용되었습니다. 폐쇄 당시 제단과 비석은 의도적으로 부서졌고, 동굴은 1963년 발견 당시 잔해로 가득 차 있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은 원래 신전의 복원물입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상당히 충실하게 재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래 동굴 입구는 지금보다 더 좁게 덮여 있었으나, 잔해 제거 작업 중 안전 문제로 개구부를 넓힐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동굴 안쪽에는 제단과 두 개의 좌석 위를 덮는 맞배지붕 형태의 작은 건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1976년 발굴 과정에서 고고학자들은 로마 시대 지층 아래에서 철기 시대의 선사 유적을 추가로 발견했습니다. 절개문양으로 장식된 속이 빈 그릇, 도자기 파편, 코뿔소 뼈 등이 그것으로, 이 동굴이 로마 이전부터 오랜 세월 사람들의 공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발굴이 완료된 뒤 미트라에움은 원본 제단과 좌석, 그리고 비석과 묘비의 정밀 복제품을 활용해 복원되었습니다. 현재는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12시에 누구나 방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