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남동부 바스뷔크(Başbük) 마을의 한 2층 주택 아래, 기반암을 직접 깎아 만든 거대한 지하 단지가 최소 30미터에 걸쳐 뻗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유적은 처음에는 고고학자가 아닌 약탈자들의 손길이 닿았습니다. 당국이 이들을 검거한 후, 고고학자들은 긴급 구조 발굴(인양 발굴)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암석 패널들을 본격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 현장의 예술 작품은 기원전 1000년경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중에서도 극히 드문 '신들의 행렬' 묘사가 담겨 있었습니다. 완성되지 못한 채 남겨진 이 작품은 아시리아 양식으로 조각되어 있어, 이 단지가 신아시리아 제국 시대에 조성되었음을 시사합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신아시리아 국가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했습니다. 기원전 900년부터 600년 사이 아나톨리아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했는데, 전문가들은 바로 이 시기에 해당 예술 작품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작품에 수반된 비문은 정복의 서사가 아니라 통합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비문은 아시리아어가 아닌 현지 언어인 아람어로 새겨져 있으며, 작품 역시 아나톨리아와 시리아의 종교적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실제로 비문은 아시리아 양식에도 불구하고 등장 인물들을 지역 신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폭풍의 신 하다드(Hadad), 달의 신 신(Sîn), 그리고 시리아의 최고 여신 아타르가티스(Atargatis)를 묘사한 해당 지역 최초의 표현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또한 '무킨-아부아(Mukīn-abūa)'라는 이름이 언급된 비문도 식별했습니다. 그는 아다드니라리 3세(기원전 811~783년 재위) 치세에 활동한 신아시리아 관리였습니다.
연구진은 그가 이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위임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지역 주민들과 화합하고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 지하 단지를 활용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러나 유적이 끝내 완성되지 못했다는 점은 이 사업이 성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반란과 같은 돌발 변수가 건축 작업에 차질을 빚었고, 결국 건축가들이 현장을 포기하게 만들었을 수 있습니다. 연구 저자들은 후속 연구가 고대 제국의 문화와 정치 실상을 밝히는 데 기여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구조 발굴 형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유적 전체를 조사할 수는 없었습니다." 연구 저자 중 한 명인 아달리(Adalı) 박사는 말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바스뷔크에서 추가 발굴이 이루어질 것이며, 신비로운 지하 단지의 더 많은 모습이 드러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