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 지나는 피레네 산맥 동쪽 끝자락에는 오늘날 양국을 잇는 핵심 통로인 페르투스(El Pertús) 고개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부터 17세기까지 이 일대의 주요 관문은 페르투스 고개보다 약간 남쪽에 있는 파니사르(Panissars) 고개였습니다. 현재 이곳은 페르투스 고개에서 언덕 하나를 사이에 둔 험준하고 외진 곳으로, 17세기에 축조된 발라과다(Balaguarda) 요새가 서 있어 당시의 모습을 짐작하게 합니다.
해발 약 340m에 위치한 파니사르 고개에는 옛 수도원 유적과 산타 마리아 베네딕토회 병원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기원전 71년에 세워진 고대 기념물, 이른바 '폼페이우스 트로피(Pompey's Trophy)'의 잔해도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판노니아(Pannonia) 출신 로마 수비대가 주둔했는데, 이 때문에 castrum pannoniorum(판노니아인들의 진영)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시간이 흐르며 오늘날의 '파니사르'라는 지명으로 변화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일부 라틴 문헌에서는 이곳을 Summus Pyrenaeus, 즉 '피레네의 정상'이라 불렀습니다.
트로피는 아마도 세르토리우스와의 전쟁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그리고 분명히 히스파니아를 떠나 로마로 돌아가기 전에 폼페이우스가 직접 세운 것으로 추정됩니다.

안타깝게도 이 석재들은 중세 시대 인근 건축물의 재료로 쓰이면서 기초 부분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은 기초만 해도 가로 36m, 세로 30m에 달해, 상당한 규모의 건축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기념물은 갈리아 남부를 지나 알프스까지 이어지는 비아 도미티아(Via Domitia, 기원전 118년 포설)가 히스파니아로 들어가는 바로 그 지점에 세워졌습니다. 이후 이곳은 반도 남쪽으로 향하는 비아 아우구스타(Via Augusta)의 기점을 표시하는 역할도 하게 되는데, 이 도로명은 '헤라클레스의 길'로 불리던 도로를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보수하도록 명령한 데서 유래했습니다.
살루스티우스(Sallust), 스트라본(Strabo), 대(大) 플리니우스(Pliny the Elder) 등 고전 문헌에 이 트로피가 언급되어 있었지만, 정확한 위치는 1984년 산타 마리아 교회 벽에서 로마식 석블록이 발견되고 고고학 조사가 진행되면서에야 밝혀졌습니다.

고고학자들의 복원 연구에 따르면, 이 기념물은 중간 높이의 테라스 위에 더 좁은 탑이 솟아 있는 개선문 형태였습니다. 기단은 비아 도미티아와 비아 아우구스타가 교차하는 지점 양옆으로 35m 크기의 정사각형이었으며, 탑 꼭대기에는 폼페이우스의 동상이 세워지고 히스파니아를 마주한 면에는 새 속주를 정복한 도시 876곳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또 다른 가설을 제시합니다. 개선문과 탑이 밑변 35m, 높이 60m에 달하는 정각뿔(피라미드) 구조의 일부를 이루었을 가능성입니다.

형태가 어떠했든 폼페이우스 트로피는 영묘나 등대 같은 헬레니즘 양식 기념물에서 영감을 받은 새로운 그레코로만 트로피 개념을 연 사례로, 알프스에 있는 아우구스투스 트로피(기원전 7~6년) — 이 유형으로 현존하는 유일한 트로피 — 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나아가 이 트로피는 지중해와 유럽 세계에 대한 로마의 패권을 기념한 최초의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발굴 조사 결과, 비아 도미티아 구간에서는 기초용 사암 블록을 받치기 위해 설계된 수레바퀴 자국과 계단식 도랑의 흔적도 확인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유적은 엘 페르투스(El Pertús) 방면의 길과 리우노구에스(Riunoguès) 마을의 숲길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Vimeo에서 트로피 관련 영상과 가상 복원 영상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