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블레셋인 최초의 공동묘지, 이스라엘 아쉬켈론에서 발굴되다
거인 골리앗의 민족으로 알려진 블레셋인을 둘러싼 성경 속 전설이, 2600년 전 사라진 이 신비로운 민족의 첫 공동묘지가 발견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남부 아쉬켈론(Ashkelon)에서 발견된 유골들은 수천 년간 적대적 기록에만 의존해 왔던 블레셋 역사 연구에 전환점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과거 무덤 방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웅크리고 있던 미국 고고학자는 붓을 들고 모래땅에서 향수가 담긴 테라코타 병과 함께 매장된 블레셋 여성의 온전한 유골을 조심스럽게 꺼내고 있었습니다. 병은 해골 잔해에 그대로 붙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수년간의 발굴 작업 끝에 드디어 그들과 직접 마주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하버드대학교 고고학자 다니엘 마스터(Daniel Master)는 이스라엘 고대유물청 주관으로 진행 중인 발굴에 참여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는 AFP 통신에 "발견된 145구의 유골을 통해 단순히 장례 의식뿐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할 단서들을 함께 수집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다양한 고고학 탐사대가 블레셋인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연구를 가능하게 할 공동묘지를 찾기를 바란 지 30년 만의 성과입니다. 이스라엘 고대유물청 은퇴 검사관의 제보에 따라 2013년 고대 블레셋 항구 도시 아쉬켈론 부지에서 첫 무덤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전성기 인구 1만3000명에 달했던 이 도시 자리에는 현재 자연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역사를 빼앗긴 민족, 블레셋인은 누구인가
블레셋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이른바 '바다의 민족'으로 불리는 이들(오늘날 레바논 연안에 살았던 동시대 민족 페니키아인에게도 쓰인 명칭)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특징적인 적흑색 도기를 근거로 에게해의 미케네 문명, 즉 그리스 섬 지역에서 이주했다는 설이 유력한 가운데, 사막이나 산악 지역 출신의 현지 부족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어 왔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들이 이 셈족 지역에서 이방인이었다는 점입니다." 다니엘 마스터는 단언합니다. 블레셋인의 존재는 기원전 1200년부터 600년까지 오늘날 가자에서 텔아비브에 이르는 좁은 해안 지대에서 확인됩니다. 자부심 강한 상인이자 항해자였던 블레셋인들은 인도유럽어 계통의 언어를 사용했으며, 할례를 행하지 않았고 돼지고기와 개고기를 먹었습니다. 인접한 네 개의 블레셋 도시(가트, 가자, 아쉬도드, 에크론) 폐허에서 발견된 동물 뼈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이 도시들이 하나의 국가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블레셋인의 역사는 적이자 이웃이었던 이스라엘 백성이 성경에서 그려낸 극도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블레셋인은 창세기부터 언급되며, 특히 사무엘서에는 블레셋 전사들이 유대 언약궤를 빼앗은 사건과 거인 전사 골리앗과 다윗의 유명한 일대일 대결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성경 묘사에서 예의 없고 교양 없는 사람을 뜻하는 형용사 '필리스틱(philistine)'이 파생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그들의 역사를 빼앗겨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유물을 활용하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민족이라고 묘사한 적들의 말이 아니라 그들의 유해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스터는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3년간 비밀에 부쳐졌던 아쉬켈론 묘지 발굴
발굴 구덩이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야외 실험실에서는 유해 분석 전문 고고학자 셰리 폭스(Sherry Fox)가 뼈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내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치아를 보면 그들이 힘든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장이 중단된 흔적이 보이는데, 이는 아마 유년기의 기근이나 심한 열병 때문일 겁니다. 또한 뼈를 통해 그들이 무거운 육체노동에 종사했다는 것, 근친결혼을 했다는 것, 그리고 아마 직물 작업을 위해 치아를 도구처럼 사용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해골을 들어 보이며 설명했습니다.
다만 셰리 폭스는 그들이 "특별히 흉측한 외모"를 갖고 있지 않았으며 "평범한 신장"이었다고 밝혔습니다. 골리앗 같은 "거인"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인과 팔레스타인인 사이에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하버드 팀은 명쾌한 답을 내놓습니다. "단어는 비슷하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아쉬켈론 도시는 기원전 604년 12월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고, 생존자들은 바빌론으로 추방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모든 것은 블레셋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다니엘 마스터는 이렇게 단언했습니다.
한편 아쉬켈론 묘지 발굴은 3년간 비밀에 부쳐졌습니다. 유대인 무덤의 훼손을 우려하는 초정통파 유대교도들이 묘지가 건드려질 때마다 수천 명 규모로 시위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 감안되었기 때문입니다. 무덤들은 올여름 완전히 다시 덮이며, 발굴 현장에서 나온 유물 일부는 7월 10일부터 예루살렘 록펠러 역사·고고학 박물관에서 전시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