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역사 지구에서 원형 신전과 아즈텍 의식용 공놀이 경기장(볼 코트)의 흔적이 발굴되었습니다.

2017년 6월 7일 멕시코 당국이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고대 아즈텍 신전의 기단과 함께 공놀이 경기장 일부가 멕시코시티 구도심에서 확인되었습니다. 멕시코시티는 아즈텍(메시카) 제국의 옛 수도 테노치티틀란 위에 세워진 도시이기 때문에, 토목 공사 중 고대 유적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닙니다. 이번 유적도 웅장한 식민지 시대 대성당 뒤편, 도시의 거대한 중앙 광장인 소칼로를 내려다보는 자리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바람의 신 에헤카틀에게 바쳐진 원형 신전
15세기 말에 세워진 이 원형 회벽 신전은 아즈텍 판테온의 태초 신격 중 하나인 바람의 신 에헤카틀(Ehecatl)에게 헌정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멕시코 국립역사인류학연구소(INAH)의 고고학자 에두아르도 마토스에 따르면, 현재까지 하층 구조만 발견되었지만 전성기에는 꼭대기가 뱀이 몸을 감은 형태로 장식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코르테스가 목격했던 생사를 건 공놀이
전문가들은 바로 이 유적 자리에서 1528년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가 최후의 황제 모테수마의 초대로 아즈텍의 의식용 공놀이를 처음 관람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경기는 규칙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 때로 인신공양으로 이어지기도 했던 극적인 스포츠였습니다.

마야·아즈텍 지역에서 제작된 기원후 600~900년경 비석에 새겨진 공놀이 선수. 출처: Ann Ronan Picture Library / Photo 12 / AFP
경기 방식과 우주론적 의미
기원전 1500년경 등장한 이 경기는 두 팀이 맞서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으며, 무게가 최대 3kg에 달하는 고무공을 사용했습니다. 경기장은 'H'자 형태의 구조를 한 틀라크틀리(tlachtli)로, 지금까지 마야·아즈텍 문화권에서 1,000곳이 넘는 경기장이 발견되었습니다. 코덱스(고대 필사본)와 스페인 측 기록에 따르면 선수들은 발이나 손으로 공을 만지는 것이 금지된 채, 엉덩이·팔꿈치·팔뚝만으로 공을 다루어야 했습니다. 손등 보호대와 패딩 재킷이 충격을 완화해 주었습니다. 목표는 공이 땅에 닿지 않게 하면서 상대 진영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 의식이 겹치는 날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공놀이는 창세의 과정을 의식적으로 재현하여 우주 속 생명과 죽음의 순환이 끊기지 않도록 보장하는 행위였습니다. 태양의 운행에 비유되던 공의 궤적은 절대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패배한 팀에게는 처참한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의식은 패자들의 참수로 마무리되었고, 그들의 머리는 섬뜩한 두개골 선반 촘판틀리(tzompantli)에 전시되었습니다. INAH의 고고학자 라울 바레라의 말을 믿는다면, 경기장 인근에서 발굴된 32개의 경추(목뼈) 주인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발굴 현장과 남은 유물
현재 구조물의 일부와 계단, 관람석 일부만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원래 경기장의 길이가 약 50m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공놀이는 울라마(ulama)라는 이름으로 규칙을 완화한 형태로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습니다.
모테수마의 전임 황제 시대에 세워진 신전
원형 신전은 모테수마의 전임자인 황제 아위초틀(Ahuitzotl, 재위 1486~1502)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전체 구조물은 길이 34m, 높이 4m 규모였습니다. 이번 유적은 수도에서 가장 철저히 연구된 장소 중 하나인 대신전(템플로 마요르) 부지 인근, 멕시코시티 구도심에서 발굴된 최신 유적입니다.
멕시코 문화부 장관 마리아 크리스티나 가르시아는 "이번 발견은 선사시대 도시 테노치티틀란의 영광 속으로 다시 빠져들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고 밝혔습니다.
흥미로운 배경도 있습니다. 해당 부지 바로 위에는 호텔이 서 있었지만, 1985년 멕시코 수도를 강타해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으로 붕괴했습니다. 이후 호텔 소유주들이 이 아즈텍 유적 요소들을 발견하고 국립인류학역사연구소에 신고하면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멕시코 고고학자들은 이 신전이 1486년에서 1502년 사이에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AFP 보도 자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