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대규모 의식에서 희생된 아이들 140명의 유해가 아메리카 대륙, 콜럼버스 도래 이전 문명인 치무(Chimú)가 자리했던 지역에서 발굴되었습니다.

히스패닉 정복 이전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아동 희생 유적지가 페루 북부 해안의 우앙차키토(Huanchaquito)에서 확인되었습니다.
콜럼버스 이전 문명의 충격적인 발견
일부 시신은 그대로 드러난 채였고, 일부는 두개골에 진사(朱砂)를 발라 피로 물든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아동·청소년 140명과 어린 라마 200마리가 550년 전 태평양 연안, 잉카 제국에 앞선 중요한 콜럼버스 이전 문명인 치무 제국(1000~1470)의 심장부에서 제물로 바쳐진 것입니다. 그 어느 때와도 견줄 수 없는 규모의 의식이었습니다. "포로나 주인과 함께 순장된 하인들의 희생 사례는 수없이 연구해 왔지만,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미국 툴레인 대학교의 인류학자 존 베라노(John Verano)는 Sciences et Avenir와의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2018년 4월 26일에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이 발견을 '확인된 사례 중 가장 큰 아동 희생'으로 보도하며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페루 우앙차키토 희생 유적지의 전경. © Courtesy Oscar Gabriel Prieto/National Geographic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학살은 1400년~1450년 사이
우앙차키토-라스야마스(Huanchaquito-Las Llamas)라 불리는 이 유적지는 2011년부터 작은 희생자들의 유해가 꾸준히 발굴되어 온 곳으로, 페루 북부 트루히요 주의 도시 지역 한복판, 해발 약 300m의 고지대 도로변에 위치합니다. 이곳 인골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이 대학살은 1400년에서 1450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섬뜩한 세부 사항도 함께 드러났습니다. "인골과 동물 골격 모두 흉골 부위에 흠집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는 아이들의 가슴을 열어 심장을 적출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라고 존 베라노는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15세기 우앙차키토에서는 5세에서 14세 사이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심장 적출(cardiectomy), 즉 갈비뼈 사이에서 심장을 꺼내는 인신공양 의식이 행해진 것입니다.

우앙차키토 유적지에서 진사 안료로 얼굴을 덮은 채 발견된 어린 희생자의 심장 적출 흔적. 가슴 부위가 잘려 나갔다. © Courtesy Oscar Gabriel Prieto/National Geographic
한 번에 이토록 많은 아이가 희생된 적은 없었다
2011년 첫 발굴 당시부터 프랑스와 페루 고고학자들이 참여한 이 조사는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발굴된 아동과 라마의 유해 수는 전례 없는 것이었습니다"라고 현재 같은 성격의 또 다른 유적을 연구 중인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의 고고학자 니콜라 고파르(Nicolas Gopfeart)는 말합니다. "라마들은 아이들이 저승길을 함께 가도록 돕기 위해 희생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일부 라마의 목에는 실제로 끌려올 때 사용된 밧줄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치무의 후계자인 잉카, 혹은 마야와 아즈텍 사이에서도 알려져 있었지만, 한 번에 이렇게 많은 아이가 이토록 큰 규모로 희생된 사례는 없었습니다"라고 존 베라노는 강조합니다.

페루 우앙차키토 히스패닉 이전 유적지에서 청소년의 골격을 조사하는 미국 인류학자 존 베라노. © Courtesy Oscar Gabriel Prieto/National Geographic
전성기 치무 제국은 수도 찬찬(Chan Chan)이 우앙차키토 유적지에서 불과 1.5km 떨어져 있을 만큼, 태평양 연안을 따라 거의 1,000km에 달하는 영토를 지배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져 이 사람들이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을까요? 발굴 과정에서 확인된 두꺼운 진흙층이 하나의 단서를 제공합니다. 평소 건조한 해안 지역에 내린 집중 호우와 대홍수는 특히 격렬했던 엘니뇨 현상 때문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1982~1983년에 발생한 같은 현상은 페루 북부에 몇 달 만에 250cm가 넘는 비를 뿌려 모든 것을 파괴하는 참사를 낳은 바 있습니다.

우앙차키토-라스야마스 유적지에서 라마와 함께 발견된 140명의 희생 아동 중 한 명. © Courtesy Oscar Gabriel Prieto/National Geographic
기후 이변과 신의 분노
15세기에 이런 유형의 재앙은 연안 어업과 치무 문화 전반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왔을 것이고, 이는 지역 주민들을 극단적 지경에 몰아넣었을 수 있습니다. "콜럼버스 이전 사회에서 종교는 사유 체계 전체를 관통하고 있었습니다. 자연 현상과 초자연 현상 사이에 경계란 없었습니다. 이들 대다수에게 자연은 공포의 대상이었고, 기후 재해는 즉각적인 파괴와 죽음, 그리고 이 해안 사막 지역을 덮치는 기근을 의미했습니다"라고 페루 북부 해안 고대 정착지 전문가인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의 고고학자 클로드 쇼샤(Claude Chauchat)는 설명합니다. 신의 분노가 주는 공포 앞에서 태평양 연안 주민들은 신들을 달래기 위해 인신공양에 의존했을 수 있으며, 우앙차키토의 경우 다른 희생 의식이 실패했다고 여겨졌을 때 자신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 바로 자기 아이들을 바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의식은 훗날 잉카가 행한 카파코차(Capacocha) 의식과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이례적인 강우와 자연 현상과 연관된 이 의식에서도 아동(보통 가장 아름답거나 카시크(추장)의 자녀)이 희생되었고, 창조신 위라코차(Wiracocha) 혹은 치무와 연안 지역의 대응 신과 결부된 갈색·흰색·검은색 등 특정 색깔의 라마가 함께 바쳐졌습니다"라고 파리 제1대학교의 안데스 고고학 강사 파트리스 르콕(Patrice Lecoq)은 말합니다. 현재 페루 트루히요 국립대학교의 오스카 가브리엘 프리에토(Oscar Gabriel Prieto)의 주도로 새로운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