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0일,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대학교의 고고학자 루이자 캠벨(Louisa Campbell)은 안토니우스 성벽(Antonine Wall)의 '거리석'에서 채색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색채의 흔적들은 극도로 강렬한 도상 프로그램을 뒷받침합니다. 조각에 입혀진 문양과 색채는 칼레도니아 원주민들을 향해 로마의 위력을 과시하는, 말 그대로 선전용 작품이었던 것입니다.

▲ 브리지니스(Bridgeness) 출토 거리석. 스코틀랜드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s Scotland) 소장.
색으로 가득했던 그리스·로마 고대 세계
그리스·로마 고대는 색의 세계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익히 보는 창백한 대리석 흉상, 신들의 조각상, 신화를 담은 부조들은 사실 모두 채색되어 있었습니다. 로마 본토에서 그러했듯이, 제국의 가장 외딴 변경 지방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글래스고 대학교(스코틀랜드)의 고고학자 루이자 캠벨은 안토니우스 성벽의 거리석 부조를 X선으로 분석했습니다. 거리석이란 군단병들이 자신들이 축조한 성벽 구간을 황제에게 바치며 새긴 커다란 석판을 일컫습니다. 2018년 4월 20일, 그녀는 이 돌들에서 안료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노란색과 빨간색이 주를 이루는 제한된 색 팔레트였는데, 이 색들은 저지대(Lowlands)의 짙은 녹색 배경 속에서도 돋보이도록 선택된 것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최북단 방어선, 안토니우스 성벽
안토니우스 성벽은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의 명으로 건설된 요새 방어선으로, 스코틀랜드의 포스강 하구(Firth of Forth)와 클라이드 강 하구 사이를 잇습니다. 이 성벽은 베니코네스(Venicones), 베르투리오네스(Verturiones), 바코마기(Vacomagi) 등 훗날 픽트족(Picts)이 되는 민족들의 침입으로부터 제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역 민족을 정복한 뒤, 군단병들은 흙과 돌로 이루어진 길이 63킬로미터의 성벽을 십여 년에 걸쳐 완공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세운 구간을 기념하기 위해 거리석, 즉 새기고 부조로 조각한 석판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물감을 칠했던 것입니다.
모호함 없는 제국의 선전
현재까지 전해지는 20여 점의 거리석에 새겨진 글귀는 황제의 이름과 칭호를 선포합니다. '조국의 아버지(Pater Patriae)'라는 문구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부조 조각은 더욱 다채롭습니다. 군단의 상징 문장, 즉 제20군단의 멧돌리와 제2군단의 염소자리 문양 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 부조들은 로마군이 원주민을 상대로 거둔 승리를 강조합니다. 현지 보병을 유린하는 로마 기병, 두 손이 등 뒤로 묶인 채 무릎 꿇고 항복하는 칼레도니아 전사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어, 지역 주민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극명했습니다.

▲ 글래스고 헌터리언 박물관(Hunterian Museum)의 서머스턴(Summerston) 거리석 앞에 선 고고학자 루이자 캠벨. 출처: 글래스고 대학교.
루이자 캠벨은 "이 조각들은 로마가 이들 원주민 집단과 다른 집단들에 대한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사용한 선전 도구다. 이는 제국이 국경을 통제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보는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의미를 지녔다"고 설명했습니다.
연구를 통해 밝혀진 색채는 이 메시지를 한층 부각하고 강화했습니다. 노란색 계열—자황(orpiment)과 오크(ocher)—은 의복과 피부에 사용되었다면, 빨간색—전쟁의 신 마르스(Mars)의 색—은 훨씬 음산한 의미를 지닙니다. 빨간색은 군단병들의 망토에 묻어 있었을 뿐 아니라, 포로가 된 칼레도니아 전사들의 몸에도 칠해져 있었습니다. 로마와의 전투 끝에 온몸이 피로 얼룩진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로마 군단의 군기 장식이자 유피테르(Jupiter)의 상징인 독수리의 부리에도 피가 묻어 있었는데, 마치 적의 살점을 뜯어먹은 듯한 형상입니다.
아마도 통행로 인근의 전략적 요충지에 세워졌을 이 사암 석판들은, 지금은 돌의 본래 색을 띠지만 당시에는 채색으로 더욱 증폭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그것은 주변 땅에 대한 제국 권력의 확립이자, 로마의 승리를 상기시키는 경고, 그리고 어떠한 반역도 피로 씻어내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피로 쓴 약속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미래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완공된 지 채 십 년이 지나지 않아 로마인들은 안토니우스 성벽을 버리고 하드리아누스 성벽(Hadrian's Wall)으로 후퇴했습니다. 이후 하드리아누스 성벽이 서기 5세기까지 로마 제국의 국경 역할을 맡았습니다. 로마 제국은 곧 브리튼섬을 스스로 내버려두다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로마의 권력은 이렇게 막을 내린 것입니다. Sic transit gloria mundi — 세상의 영광은 이렇게 지나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