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도싯주 체른애버스 마을 언덕에 새겨진 거대한 나체 남성 형상, 이른바 '체른애버스 거인(Cerne Abbas Giant)'의 정확한 제작 시기를 밝히기 위한 분석 작업에서 마침내 첫 번째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백악질 언덕에 새겨진 이 유명한 거인은 선사시대가 아니라 아마도 중세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국 도싯주에 위치한 체른애버스 거인.
키 55미터에 달하는 이 거인은 알몸 상태로 한 손에는 곤봉을 들고 언덕 위에 우뚝 서 있어, 그 어떤 해부학적 디테일도 감추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거인의 형상은 언제부터 잉글랜드 남부 도싯의 백악질 구릉지대에 새겨져 있었던 걸까요? 바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글로스터 대학교 고고학자 팀이 2020년 4월 연대 측정을 위한 일련의 시료 채취에 착수했고, 최근 첫 번째 결과를 얻었습니다. 놀랍게도 거인은 일부 학자들이 기대했던 선사시대의 유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2019년 체른애버스 거인 복원 작업에 참여한 내셔널 트러스트 자원봉사자. © National Trust
수 세기 동안 이 거인은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습니다. 하지만 체른애버스 마을을 내려다보는 가파른 언덕 위에 누워 있는 길이 55미터의 이 거인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거인이 자리한 땅은 문화재 단체인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의 소유로, 이 단체는 1920년 저명한 지주 가문으로부터 이 땅을 인수했습니다. 이후 자원봉사자들이 정기적으로 관리를 맡아 왔는데, 2019년에는 무려 17톤의 백악을 보충해 거인의 윤곽을 다듬고 본래의 빛을 되살리기도 했습니다.
OSL 연대측정과 달팽이 껍데기
켈트 신의 형상일까? 로마 시대, 색슨 시대, 혹은 중세의 작품일까? 아니면 단순한 소년들의 장난일까? 거인에 대한 질문은 끝이 없었습니다. 알몸 거인이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690년으로, 그 이전의 기록은 전무합니다.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내셔널 트러스트(토지 인수 100주년을 기념하며)는 글로스터 대학교와 협력해 거인의 연대 측정에 나섰습니다. 환경과학과 필립 톰스(Philip Toms) 교수는 먼저 'OSL(광여기 루미네선스)'이라 불리는 연대측정법을 활용했습니다. 이 기술은 광물에 적용되며, 해당 광물이 마지막으로 햇빛에 노출된 이후 경과한 시간을 측정하는 원리입니다.
톰스 교수는 거인 형상 여러 지점에 절개를 내어 깊숙한 곳에서 약 10개의 토양 시료를 채취했고, 이를 일련의 검사에 통과시켜 흙이 언제 묻혔는지를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대학과 실험실이 폐쇄되면서 지연이 생겨, 정확한 연대 결과는 아직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이번 연구를 총괄하는 환경 변화 전문 고고학자 마이크 앨런(Mike Allen)이 Sciences et Avenir와의 인터뷰에서 설명했습니다.

토양 미세형태학적 연구를 위해 체른애버스 거인의 몸체를 따라 시료를 채취하는 모습. ©J. Gardiner
반면 새로운 결과는 흙 속에 들어 있던 지름 2mm 크기의 미세한 육지 달팽이 껍데기 분석에서 나왔습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백악 거인은 아마도 중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달팽이들은 13~14세기에 대륙에서 온 물품을 포장하던 짚이나 건초에 실려 우연히 영국으로 유입되었습니다"라고 마이크 앨런이 밝혔습니다. "달팽이 종에 따라 어두운 숲에 서식하는 종이 있는가 하면, 키 큰 풀밭이나 방목된 초원, 경작된 토양에 사는 종도 있습니다. 이들을 분석하는 것은 고고학 유적지에서 토지 이용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입니다."
선사시대의 신비로운 유산이라는 낭만적인 추측은 물 건너간 셈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중세라는 구체적인 시대가 밝혀지면서, 체른애버스 거인은 그 탄생 배경만큼은 더욱 흥미로운 연구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남은 OSL 분석 결과가 발표되면 이 거대한 미스터리의 또 다른 단서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