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1717년 침몰한 해적선 와이닛 갈리에서 발견된 6구의 해골, '블랙 샘 벨라미'의 유해일까?

역사상 유일하게 학술적으로 인증된 해적선 난파선, 1717년 폭풍우로 침몰한 와이닛 갈리(Whydah Gally)호가 발견된 지 약 35년 만에 새로운 발견이 이루어졌습니다. 수중 탐사대가 난파선 근처에서 응결체(콘크리션) 속에 보존된 여섯 구의 해골을 확인한 것입니다. 연구진은 그중 전설적인 영국 해적이자 역대 최고 부자로 추정되는 '블랙 샘' 벨라미(Black Sam Bellamy)의 유해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에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1717년 침몰한 해적선 와이닛 갈리에서 발견된 6구의 해골,  블랙 샘 벨라미 의 유해일까?

2016년 와이닛 호 잔해에서 발견된 은화가 담긴 응결체. 뼈도 이러한 방식으로 보존되었을 수 있습니다.

1985년 리처드 도너 감독의 영화 괴물들(Goonies)을 어린 시절에 본 세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 모험을 꿈꿔봤을 것입니다. 오레곤의 가옥이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13살 소년 미키 월시는 친구들과 함께 '외눈박이 윌리'의 해적선을 찾아 나섭니다.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그 난파선에는 값나가는 보물이 잠들어 있다고 알려져 있었죠. 전설에 따르면 그 해적은 영국 왕립 함대에 대한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배와 선원들과 함께 동굴로 숨어들었고, 결국 그 동굴이 무덤이 되었다고 합니다. 대포의 포격 아래 돌들이 출구를 영원히 막아버린 것이죠. 물론 이야기는 한 세대를 사로잡은 영화의 시나리오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는 1717년 4월 26일 미국 동북부 케이프코드 앞바다에서 배와 함께 보물째로 침몰한 전설의 영국 해적 새뮤얼 벨라미의 실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난파선과 보물은 있지만, 선장은 없다

사실 벨라미의 배인 와이닛 갈리호가 발견된 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1984년 수중 고고학자 배리 클리포드(Barry Clifford)가 팀과 함께 해안에서 6km 떨어진 곳에서 이 배의 잔해를 발견했습니다. 300톤급에 18문의 대포를 갖춘 이 영국선은 1717년 2월, 설탕·남색염료·금·은·상아, 그리고 무엇보다 갓 아프리카에서 끌려와 카리브해로 향하던 노예들을 가득 실은 상태에서 벨라미에게 나포당했습니다. 이 발견으로 배리 클리포드는 세계 유일하게 입증된 해적선 난파선을 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당시 언론들은 4억 달러에 달하는 전리품이라고 보도했지만, 금화를 포함해 인양된 8,000여 점의 유물 가치만 놓고 보면 아직 요원한 일입니다. 결투용 권총, 배의 종, 대포, 잉크, 테라코타 파이프, 옷 조각 등이 7m 깊이의 두터운 모래층에서 속속 모습을 드러냈고, 이 때문에 탐사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 유물들은 현재 케이프코드의 와이닛 해적 박물관에서 관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보물, 어쩌면 가장 가치 있는 보물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벨라미 자신의 유해입니다. 고고학자들은 그의 시신이 바닷물 속에서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제기해왔습니다.

1717년 침몰한 해적선 와이닛 갈리에서 발견된 6구의 해골,  블랙 샘 벨라미 의 유해일까?

1984년 배리 클리포드가 와이닛 호 잔해에서 회수한 금의 일부. 출처: Wikimedia Commons

발견된 여섯 구의 해골

그런데 탐사대가 마침내 그 유적을 손에 넣은 것일까요? 최근 와이닛 해적 박물관은 보도자료를 통해 와이닛 호 잔해 인근에서 여섯 구의 해골을 담은 응결체 여러 개를 발견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응결체는 침수된 금속 주변에 단단한 광물 덩어리가 형성되는 현상으로, 염분이 많은 바닷물 속에서도 유기물이나 다른 물체를 수백 년 동안 보존할 수 있게 해줍니다. 뼈는 아직 분석되지 않았지만, 이미 전문가들의 흥미를 자아내고 있으며, 그중에서 샘 벨라미의 유해를 찾아낼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2018년에도 연구팀은 권총과 금화 주머니 곁에서 발견된 해골을 벨라미의 것으로 추정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DNA 검사 결과는 부정적이었습니다. 같은 해 와이닛 박물관 측은 영국에 살던 후손을 통해 벨라미의 DNA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발견된 유해는 결국 벨라미 휘하 해적단 소속 선원, 즉 "동부 지중해 지역 출신으로 추정되는 남성"의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자료는 전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새로 발견된 뼈가 마침내 우리를 벨라미에게 이끌어줄지도 모릅니다." 배리 클리포드는 지역 방송 WHDH를 비롯한 현지 언론에 "첨단 최신 기술이 이 해적들의 신원을 밝혀내고, 아직 생존해 있을지 모르는 후손들과 재회시켜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해적질, 포도주, 그리고 민주주의

'블랙 샘'이라 불린 벨라미는 당시 유행하던 가발보다는 검게 태어난 머리카락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붙은 별명입니다. 그는 1716년 해적이 된 영국인으로, 단 1년간의 해적 생활만으로 무서운 명성을 쌓았습니다. 무려 53척의 배를 나포하며 당시 역대 최고의 부자 해적 반열에 올랐죠. 그러나 운명은 화려한 성장만큼이나 극적인 몰락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1717년 4월 26일, 육지에 있는 연인을 만나러 가던 그는 변덕스러운 케이프코드 앞바다의 폭풍우 속에서 143명의 선원들과 함께 와이닛호와 운명을 함께했습니다. 그날 밤 참사에는 술이 한몫했다고 전해집니다. 며칠 전 벨라미는 마데이라 포도주를 가득 실은 삼돛대선 메리 앤(Mary Ann)호를 나포한 상태였습니다. 메리 앤 호의 생존자이자 포로였던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해적들은 너무 취해서 두 척의 배조차 제대로 통제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승선한 146명 중 해안까지 헤엄쳐 살아남은 이는 존 줄리언(John Julian)이라는 인물과 배의 목공 토머스 데이비드(Thomas David) 단 두 명뿐이었고, 두 사람 모두 '비자발적 참여자'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와이닛 호는 침몰 후 며칠 동안 해안에서 6km 떨어진 곳에 용골이 하늘을 향한 채 떠 있었습니다. 이는 배의 풍성한 화물을 가로채려는 해안의 약탈자들을 끌어모으기에 충분했습니다. 침몰 일주일 넘게 지난 후에야 현장에 도착한 매사추세츠 총독의 부하들이 건진 것은 겨우 200파운드 남짓의 물품과 몇몇 해양 유물뿐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2세기 뒤 탐사대가 배에 실려 있었을 금과 귀금속을 찾지 못한 이유일 것입니다.

뉴잉글랜드 역사학회(New England Historical Society)에 따르면 벨라미는 스스로를 '바다의 로빈 후드'라고 여겼으며, 자신의 선원들을 '로빈 후드의 부하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뜻밖에도 그는 민주적으로 선원단을 이끌었던 것입니다. "그의 부하는 노예, 원주민, 그리고 그의 지휘 아래 있던 선원들이었는데, 벨라미는 그들을 평등하게 대했고 중요한 결정에 투표권을 주었다." 선원들과 심지어 포로들의 안녕까지 염려한 그의 리더십은 부하들에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 그의 카리스마를 한층 높였습니다. 거칠고 피에 굶주린 해적이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사회 정의와 화려함을 갈구하는 신사에 가까운 그는 '해적왕자(Prince of Pirates)'라는 별명으로도 불렸습니다. 이번에 발견된 뼈가 과연 왕자의 것인지, 이제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