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잉카 제국의 산 정상 희생의식 '카파코차': 화산에서 발견된 아이 미라가 밝히는 비밀

15세기 안데스를 지배했던 잉카 제국은 자연재해를 달래기 위해 어린아이들을 산 정상에 바치는 희생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페루 남부 아름파토(Ampato)와 피추피추(Pichu Pichu) 화산 정상에서 발견된 미라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그 실태를 생생하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잉카 제국의 산 정상 희생의식  카파코차 : 화산에서 발견된 아이 미라가 밝히는 비밀

페루 아름파토 화산에서 발견된 2번 미라와 엑스레이 촬영 사진. 은 장신구 '투푸(tupu)'가 확인됩니다.

화산 폭발과 지진의 공포, 종교 의식으로 대응하다

전 세계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화산 폭발과 지진에 깊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2021년 5월 22일 콩고민주공화국과 르완다 국경의 니라고옹고 화산이 폭발했을 때 주민들이 공황 상태에 빠졌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과거 사회들 역시 이러한 재난에 맞서기 위해 종교 의식에 의존했으며, 15세기 안데스 일대를 지배한 잉카 제국은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학술지 Archaeological and Anthropological Sciences에 게재된 미라 연구는 이러한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1995년부터 1999년 사이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에서 약 20구의 미라화된 아이 유해를 발견한 고산 고고학 전문가이자 미국의 인류학자·탐험가인 요한 라인하르트(Johan Reinhard)가 최근 연구 결과를 해석했습니다.

희생된 5명의 아이들, 나이는 3~7세

안데스 산맥을 따라 3000km가 넘게 뻗어 있던 잉카의 영토는 지진과 화산 폭발로 수시로 흔들렸습니다. 잉카인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카파코차(Capacocha)'라 불리는 아동 희생 의식을 치렀습니다.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는 우아카(huaca), 즉 산 정상에 아이들의 시신을 모셔 그곳에 산다고 믿었던 신들의 노여움을 달래고자 한 것입니다.

이번 연구는 잉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희생 제물로 꼽히던 이 의식을 위해 희생될 아이들이 일찌감치 선별되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연구는 페루 남부 아레키파 지역의 아름파토 화산 정상(해발 5800~6300m)에서 발견된 3명과 피추피추 화산(해발 5600m)에서 발견된 2명, 총 5명의 아이 유해 분석에 기반합니다.

잉카 제국의 산 정상 희생의식  카파코차 : 화산에서 발견된 아이 미라가 밝히는 비밀
페루 남부 화산 지도로, 피추피추와 아름파토 정상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출처: Johan Reinhard(National Geographic Society 제공)

아름파토 화산에서 발견된 부분 동결 미라에 대한 엑스레이 검사는 1990년대 발견 이후 유해가 보관되어 온 아레키파 성소 박물관(Museo Santuarios Andinos)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죽음을 맞을 당시 입고 있던 라마, 구아나코, 비쿠냐 양모 직물에 그대로 감싸져 있었으며, 금과 은으로 만든 조각상과 함께 따뜻한 바다에서 멀리 가져온 귀중한 조개 스폰딜루스(spondylus)가 곁에 놓여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 이들은 3세에서 7세 사이의 아이들로, 당대 기록이 희생자들의 뛰어난 외모를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사회 집단과 신체적 특징을 기준으로 엄선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잉카 제국의 산 정상 희생의식  카파코차 : 화산에서 발견된 아이 미라가 밝히는 비밀
피추피추 화산 정상에서 희생된 두 아이 중 한 명의 변형된 두개골. 출처: Dagmara Socha

입안에 남은 폐부종의 흔적

잉카인들은 '순수'하고 '완벽한' 존재만이 신에게 다가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름파토와 피추피추 화산에서 발견된 아이들은 다른 고고학 유적지에서 나온 잉카 아동 유해에 비해 위생 상태가 좋았는데, 이는 이들이 특권 계층 출신임을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다만 예외도 보고되었는데, 아르헨티나 국경의 율라야야코(Llullaillaco) 화산이나 칠레의 엘플로모(El Plomo) 정상에서 발견된 일부 희생 아이는 손에 사마귀가 있는 등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이전 분석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아주 어린 시절에 선별되어 희생되기 몇 달 전부터 별도의 준비 과정을 거쳤습니다. 시신에는 마지막 여정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실려 올라갔겠지만, 나이가 많은 아이들은 스스로 험준한 고산을 올라야 했습니다. 실제로 엘플로모 소년의 발바닥에서는 과각화증(피부 굳은살층의 경화)이 확인되었고, 입안에서 피가 발견되어 고산지대 환경으로 인한 폐부종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자 아이들은 희생되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머리를 강타당했고, 어떤 아이는 독을 먹거나 목을 졸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모두 마취 효과가 있는 코카와 치차(chicha, 옥수수로 빚은 술)를 섭취한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연구진은 제국 전역으로 확산된 카파코차 의식이 단순한 종교 행위를 넘어 정복한 땅과 민족에 대한 이념적 통제 수단으로 기능했다고 분석합니다. 최고의 희생 제물을 바치는 의식을 통해 잉카 국가는 정복지 주민들의 복속을 강화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