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 풀리아(Puglia) 지방의 한 수도원에서 발견된 두 구의 유해는, 14세기 흑사병이 이탈리아 남부까지 실제로 닿았다는 최초의 DNA 증거를 제공했습니다.

1720~1721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유행한 페스트. 라뷔르의 『프랑스 대중사』에 실린 19세기 중반의 판화.
흑사병, 이탈리아 남부까지 미쳤을까?
14세기 중반, 유럽은 결국 인구의 약 60%를 사망에 이르게 한 흑사병에 휩싸였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이미 1347년 페스트가 시칠리아에 상륙했으며, 이탈리아 본토에서는 북부와 중부 도시들을 치명적으로 덮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임상미생물·감염질환학회(ESCMID)는 2021년 7월 8일 보도자료를 통해 "여러 역사 문서에 흑사병 사례가 기록되어 있었지만, 이탈리아 남부에서 DNA 분석을 거친 매장지는 전무했다"고 밝혔습니다.
풀리아 지방 산레오나르도 데 시폰토 수도원(Abbey of San Leonardo de Siponto)에서 진행된 발굴 조사는, 흑사병 시기 이탈리아 남부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의 한 단면을 드러냈습니다. 이 종교 시설은 여행자, 순례자, 상인들이 머물며 쉴 수 있는 중요한 의료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묘지의 일부는 13세기 말부터 14세기 초까지 사용되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고고학자들이 페스트균에 감염된 두 남성의 유해가 안치된 무덤을 발견한 것입니다.
매장 연대와 화폐로 좁혀진 사망 시기
연구를 이끈 도나토 라엘레(Donato Raele) 박사는 "산레오나르도 데 시폰토 수도원에 안장된 두 성인의 치아에서 고대 페스트 DNA를 회수한 것은 국가적으로 의미 있는 발견"이라며, "이탈리아 남부에서 제2차 페스트 범유행, 즉 흑사병과 연관된 최초의 사례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 희생자는 30~35세의 남성이었습니다. 그는 직사각형 쇠버클이 달린 허리띠를 착용하고 있었고, 오른쪽 넙다리뼈 위에서 납작하게 눌린 막대 모양 물건이 함께 발견되었습니다. 학회는 "허리띠에는 작은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안에는 다리 아래 그대로 겹쳐진 채 발견된 12닢의 데나리우스(로마 은화)가 들어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두 번째 희생자는 45세의 성인 남성으로, 옷을 완전히 갖춰 입은 채 매장되었으며 쇠와 청동 반지 등 개인 소지품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연구진은 그의 왼손에서 '어두운 유리질 물질의 수많은 알갱이'도 확인했는데, 이는 염주(로사리오)의 잔해로 추정됩니다. 그는 또한 13세기 말부터 14세기 초에 걸쳐 주조된 99닢의 토너먼트 데나리우스와, 앙주의 로베르(재위 1309~1343)의 이름으로 발행된 길리아토(Gigliato) 은화를 함께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보도자료는 "매장 연대와 화폐 연대가 제2차 범유행이 유럽에 도달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들이 흑사병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무덤 속 성인들의 네 개 치아에서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 양성 반응이 나왔으며, 이탈리아 다른 지역에서 조사된 페스트 희생자들과 동일한 균주를 포함하고 있어 매우 흡사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순례자와 상인이 끊임없이 오가던 이 수도원은, 자신도 모르게 페스트균이 빠르게 확산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버렸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