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발견

이스터 섬 주민들은 기후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문명 붕괴' 신화가 흔들린다

이스터 섬(라파누이) 문명의 '붕괴 신화'가 여전히 널리 퍼져 있지만, 최근 한 연구팀은 이스터 섬의 인구가 유럽인이 도착한 1722년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음을 밝혀냈습니다.

이스터 섬 주민들은 기후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문명 붕괴  신화가 흔들린다

붕괴 신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때때로 모아이 석상을 파스쿠아인(이스터 섬 주민)의 과욕을 상징하는 존재로 내세웁니다.

'생태학적 자멸' 이론이란?

생태학적 자멸(ecocide) 이론에 따르면, 이스터 섬의 주민인 파스쿠아인은 농경을 발전시키고 유명한 거대 석상 모아이를 세우기 위해 섬의 나무를 모두 베어 없앴다고 합니다. 이러한 과도한 개발에 씨야자 열매를 좋아하는 쥐의 침입까지 겹치면서, 12~13세기 최초의 주민들이 도착하기 전 섬 전체를 덮고 있던 아열대 숲은 사라졌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카누를 만들 나무마저 사라지자 이스터 섬의 인구 역시 몰락했다는 것이 이 이론의 핵심입니다.

2005년 제레드 다이아몬드가 저서 『붕괴: 문명은 왜 무너지는가』를 통해 대중화한 이 유명한 경고적 서사는 지구 온난화 시대에 경종처럼 울립니다. 그러나 교훈적 의미를 넘어서, 이 이야기는 실제 역사와 부합할까요? 과연 이스터 섬의 인구는 붕괴했을까요?

이스터 섬은 수십 년간의 가뭄을 겪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화분 분석 등을 통해 섬의 대규모 삼림 벌채는 확실하게 입증되어 있지만, 과학자들은 점점 더 기후 변화의 영향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17세기 전반기에 섬은 수십 년간의 가뭄을 겪었는데, 이는 태평양에서 지금도 관측되는 만성적인 해양 현상인 엘니뇨-남방 진동(ENSO)과 관련된 것으로 보입니다. 즉, 파스쿠아인은 섬 숲의 소멸 원인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뉴욕 빙엄턴대학교(Binghamton University) 연구진이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한 연구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이 팀의 목표는 통계 방법, 특히 근사 베이지언 계산법을 활용해 인구 붕괴 이론을 고고학 데이터와 대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방법은 이미 유전학 분야에서 활용된 바 있으며, 201개 탄소연대(C14) 측정 데이터에서 얻은 실증적 인구 곡선을 변수를 넣어 '이론적으로' 산출한 모델과 비교할 수 있게 해줍니다.

연구진은 야자수 수의 변화, 기후 변화, 두 매개변수 모두, 그리고 어느 것도 반영하지 않는 네 가지 모델을 실증 데이터와 비교했습니다. 이 기법이 없다면 C14 연대 측정만으로는 환경·기후 변화와 관련된 인구 변동을 연구하기 어렵습니다. 그 결과, 특정 매개변수의 영향력을 확정하지는 못했지만 모든 모델이 한 가지 점에서 일치했습니다. 바로 1722년 유럽인 도착까지 섬의 인구가 꾸준히 증가했다는 사실입니다(그 이후에는 감소 또는 정체가 나타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기후 격변에도 불구하고 이스터 섬에서 인구 감소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무너져 가는 '붕괴 신화'

이미 다른 연구들도 같은 결론을 내린 바 있습니다. 기온 상승기 이후에도 이스터 섬 주민들의 식단이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점(식량 위기를 겪지 않았음을 시사), 그리고 1722년 유럽인의 도착 이후에도 석상 축조가 계속되었다는 점이 각각 입증되었습니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CNRS)의 연구책임자 카트린 오르리아크(Catherine Orliac)는 "라파누이 사람들은 독창적인 원예가로서, ENSO 현상이 초래한 기후 변화에 탁월하게 적응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고 강조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요소 중 하나는 18~19세기 유럽 탐험가들의 기록입니다. 제임스 쿡, 프레더릭 윌리엄 비치, 장프랑수아 드 라페루즈 등의 기록에는 햇빛을 차단하고 토양의 습기를 유지하기 위해 밭에 덮은 짚, 정원을 보호하기 위해 쌓은 건조 석벽, 흐르는 물을 받아 모으기 위해 판 도랑 등 정교한 원예 시설들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반박하는 연구가 넘쳐나는데도 왜 '붕괴 신화'는 여전히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걸까요? 우선, 이스터 섬과 그 초기 주민들을 상징하는 모아이의 수와 거대한 크기는 오랫동안 당시 인구를 과대평가하게 만드는 요인이었습니다. 또한 연구팀의 칼 리포(Carl Lipo) 박사에 따르면, 오늘날 기후 변화와 인구 재앙이 자동으로 연결되곤 하며, 인구 집단의 적응 능력은 고려조차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의 선주민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는 성명에서 "과거 사람들은 우리만큼 똑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려는 자연스러운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