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가이자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에 맞선 투쟁의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1964년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1990년 프레데리크 데 클레르크(Frederik de Klerk) 대통령에 의해 석방되었고, 두 사람은 함께 199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1994년에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1994~1999)이 되었습니다. '무지개색 국가'를 이끌며 그는 20세기를 장식한 마지막 거목으로 불렸습니다. 회고록 『긴 자유로 가는 길』 출간 이후 2005년에는 유네스코 친선대사, 2006년에는 국제앰네스티 양심의 대사로 임명되었으며, 2013년 서거 시에는 세계적 규모의 장례식이 거행되었습니다.
넬슨 만델라의 생애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는 1918년 케이프주에서 태어나 코사족(Xhosa) 왕족 혈통을 이어받았으며, 가문에서 최초로 서구식 교육을 받은 인물이었습니다. 법학도였던 그는 운동선수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고, 마하트마 간디의 사상에 깊이 경도되어 흑인 민족을 식민지 예속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아프리카 내셔널리즘 사상에 공감하며 아프리카국민회의(ANC)에 합류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은 1948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인종차별 법률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공식 채택하면서 시련에 직면하게 됩니다. 1991년까지 남아프리카의 인구는 흑인, 혼혈, 백인, 인도인이라는 네 집단으로 나뉘어 서로 철저히 배제되는 구조로 운영되었습니다.
당시 남아프리카 최초의 흑인 변호사 중 한 명이었던 만델라는 1952년 시민 불복종 운동을 조직하며 ANC 내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여러 차례 체포되고 당국의 감시를 받았지만 그는 저항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해가는 탄압(1960년 샤프빌 학살) 앞에서 만델라는 오랜 망설임 끝에 프리토리아 정권에 대한 무장 투쟁을 주장하게 되었고, 폭탄 파괴 공작을 조직한 혐의로 1962년 8월 5일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그와 여러 ANC 지도자들의 재판(리보니아 재판)은 1963년부터 1964년까지 리보니아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훌륭한 변론에도 불구하고 만델라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로벤섬(Robben Island) 감옥에 수감된 그는 이후 인종 평등을 위한 투쟁의 세계적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들어 국제적으로 고립이 심해지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국내 소요를 종식시키기 위해 그를 대화 상대로 선택하게 됩니다.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투쟁의 상징
1990년 2월 11일, 넬슨 만델라는 감옥에서 석방되어 지지자들과 아내 윈니 마디키젤라 만델라(Winnie Madikizela-Mandela)의 환호 속에 영웅처럼 맞이받았습니다. 27년의 수감 생활 끝에 ANC 지도자는 단 4년 만에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해체시킬 운동의 지휘봉을 잡게 됩니다.
'분리 발전'이라는 이름의 이 인종 정책은 1948년에 공식 도입되었으며(인종 차별 자체는 3세기 전 남아프리카의 역사적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감),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국제사회로부터 점진적으로 배척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다만 실질적으로는 냉전 시기 아프리카에서 반소 봉쇄의 기둥 역할을 하며 서구의 묵인 속에 존속하기도 했습니다.
칼뱅주의 신학의 급진화와 아프리카너 내셔널리즘에서 비롯된 아파르트헤이트는 현실적으로 비백인들에게 극도로 가혹한 삶의 조건을 강요했습니다. 그들은 특정 지역으로 격리되는 등 사회·경제적 발전 가능성이 심각하게 제한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이 정책에 대한 강한 저항이 일어났으며, 그중 가장 잘 알려진 운동이 바로 만델라가 이끈 ANC였습니다. 그리고 그 탄압이 때로는 처참할 정도로 잔혹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만델라는 프레데리크 데 클레르크 대통령과의 협상을 주도하여 1991년 아파르트헤이트의 공식 종식을 이끌어냈습니다. 199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그는 인종차별, 빈곤, 에이즈에 시달리는 나라의 경제·사회 재건이라는 거대한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안정적인 다인종 민주주의를 수립하고자 했던 만델라는 무엇보다 남아프리카 '무지개색 국민'의 다양한 구성원들 간의 화해와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도전을 성공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아파르트헤이트 하에서 자행된 인권 침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진실화해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또한 아파르트헤이트의 폐해를 바로잡기 위해 흑인에게 고용 면에서 우선권을 부여하는 적극적 우대조치 정책을 시행하고, 교육·주택·상수도·전력 등 기본 서비스 접근성 확대를 위한 개발 프로그램을 추진했습니다.
아울러 군은 1998년 흑인 총사령관이 임명되고 ANC 출신 전투원들이 정규군에 통합되는 작업을 통해 크게 재편되었습니다. 흑인을 위한 폐해 시정 의지는 미국의 어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서 영감을 받아 공공기관에 인종 할당제를 도입하는 방식이나, 흑인 기업가 계층 양성을 지원하는 '블랙 이파워먼트(black empowerment)' 프로그램으로도 구체화되었습니다.
다만 이러한 조치들은 자신들이 역차별의 희생자라고 느끼는 백인들에게 우려를 낳았고, 동시에 개혁의 결실을 하루빨리 누리고자 했던 흑인 다수파의 기대에도 온전히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정계 은퇴와 죽음
1998년 모잠비크의 정치 지도자 그라사 마셸(Graça Machel)과 재혼한 만델라는 후계자 타보 음베키(Thabo Mbeki)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1999년 일반 시민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그는 특히 빈곤 퇴치를 중심으로 다양한 자선 활동에 헌신했습니다. 나라의 정치·경제·사회 재건에 있어 엇갈린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아프리카 대륙의 위대한 '현자'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넬슨 만델라는 2013년 12월 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를 추모하기 위해 같은 해 12월 10일 소웨토(Soweto)에서 100여 명의 국가 원수와 정부 수반이 참석한 가운데 웅장한 공식 추도식이 열렸으며, 만원의 경기장은 감동과 애도로 가득 찼습니다.
참고 문헌
- 넬슨 만델라, 『긴 자유로 가는 길(Long Walk to Freedom)』(자서전), 포켓(Pocket), 1996.
- 알프레드 보쉬(Alfred Bosch), 『넬슨 만델라: 마지막 거인(The Last Titan)』, 아르마탕(L'Harmattan), 1997.
- 베르나르 비올레(Bernard Violet), 『만델라, 하나의 운명(Mandela, une destinée)』(전기), 리브르 드 포셰(Le Livre de Poche),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