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드 몽포르(Jean de Montfort, 1294~1345)는 브르타뉴 공작위를 둘러싼 계승 분쟁의 핵심 인물로, 잉글랜드와 프랑스 양대 왕국이 개입하는 긴 전쟁의 도화선이 된 인물입니다.
공작위 계승 문제
그의 이복형이었던 브르타뉴 공작 장 3세는 후사가 없자 조카인 잔 드 팡티에브르(Jeanne de Penthièvre)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1341년 장 3세가 세상을 떠나자, 당시 낭트에 머무르던 장 드 몽포르는 즉시 스스로를 브르타뉴 공작으로 선포하고 공작 보물고마저 손에 넣었습니다.
샤를 드 블루아와의 대립
이에 맞서 잔 드 팡티에브르의 남편 샤를 드 블루아(Charles de Blois)는 프랑스 왕국의 귀족 재판소(동료 심판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 결과는 샤를에게 유리하게 기울었습니다. 이 결정에 힘입어 상당수의 브르타뉴 지역 귀족들도 샤를 드 블루아 진영에 합류했습니다.
20년에 달하는 전쟁의 시작
이렇게 촉발된 분쟁은 약 20년간 이어지는 '브르타뉴 상속 전쟁(War of Breton Succession)'으로 비화되었습니다. 이 전쟁은 곧 백년전쟁의 일부로 흡수되었으며, 장 드 몽포르는 잉글랜드 국왕의 지원을, 샤를 드 블루아는 프랑스 국왕의 지원을 각각 등에 업고 대립했습니다.
최후의 행로
1341년 장 드 몽포르는 낭트를 포위 공격했으나 프랑스군에게 포로로 잡히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이후 1344년 탈출에 성한 그는 다시 군세를 일으켜 캉페르(Quimper)를 포위했지만 격퇴당했고, 병마에 시달리다 끝내 1345년 엔본(Hennebont)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사후에도 아내인 플랑드르의 잔(Joanna of Flanders)이 저항을 이어가는 등 브르타뉴 상속 전쟁은 한동안 계속되었으며, 이 전쟁은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오랜 대립 구도 속에서 브르타뉴의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국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