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여성과 스포츠
고대 사회, 심지어 고대 그리스나 로마처럼 강한 가부장적 사회에서도 소녀들과 여성들이 체육 운동이나 여가 스포츠, 구기 종목, 승마, 양궁, 심지어 무술을 연습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여성들에 의해, 여성을 위한 스포츠 대회가 개최되기도 했습니다. 4년마다 올림피아에서 헤라 여신을 기리기 위해 열린 '헤라이아(Heraia)' 대회에서는 미혼 소녀들이 스타디온(달리기) 경주를 펼쳤습니다. 이들은 무릎 위까지 잘라 가슴과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키톤(chiton)을 입고, 올림피아 스타디움 길이의 6분의 1이 줄어든 거리를 달렸습니다.
그러나 고대 여성들이 신체 활동을 즐겼다고 해서 스포츠에 대한 평등한 접근이 보장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다수 고대 사회는 강한 가부장적이었고, 여성과 남성에게 부여된 성 역할은 세계, 여가, 신체에 대한 관계를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그리스에서 여성의 올림픽 출전은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관람조차 사형에 처해질 수 있는 금기였습니다. 파우사니아스(Pausanias)는 기원전 5세기, 칼리파테이라(Kallipáteira)라는 단 한 명의 여성이 최고 형벌을 면한 사례를 기록합니다. 선수인 아버지, 형제, 남편, 아들을 둔 그녀는 아들의 승리를 지켜보기 위해 규칙을 어겼다가 발각되었으나, 가족들이 선수라는 이유로 처벌을 면제받았습니다.
스파르타의 공주, 금기를 깨다
스파르타 여성의 특별한 자유
이러한 조건 속에서 여성이 올림픽에서 우승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스파르타 왕 아르키다모스 2세(Archidamos II)의 딸 키니스카(Cynisca)는 기원전 396년, 경기장에 발 한 번 들이지 않고 그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키니스카의 신분은 이 업적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스파르타 여성들은 다른 그리스 여성들에 비해 더 큰 자유와 더 나은 교육을 누렸습니다. 건강한 자녀를 낳기 위해 신체 단련과 건강한 식단이 권장되었고, 결혼 연령도 늦었습니다. 소녀들은 승마, 달리기, 레슬링, 원반 및 창 던지기 등 다양한 스포츠를 연마했습니다. 왕의 딸인 키니스카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남자아이 같은 소녀'로 불리며 승마에 빠져들었고, 재능 있는 기수로 인정받았습니다.
마차 경주의 주인, 키니스카
올림픽 승마 종목의 우승자는 기수가 아닌 말의 주인에게 돌아갔습니다. 따라서 키니스카의 출전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었습니다. 오빠 아게실라오스 2세(Agesilaus II)의 권유로(아마도 이 스포츠가 단순히 말을 가진 것만으로 우승할 수 있음을 보여줘 그 가치를 폄하하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키니스카는 말과 기수를 훈련시키고 기원전 396년 올림픽 4두 마차 경주에 팀을 출전시켰습니다. 그녀의 팀은 우승을 차지했고, 4년 뒤에도 타이틀을 성공적으로 방어했습니다.
키니스카는 경기를 직접 관람할 수도, 시상대에 설 수도 없었지만, 철저히 남성 중심이던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승리를 거둔 여성으로 역사에 남았습니다. 그녀에게는 영예가 주어졌습니다. 스파르타의 플라타너스 숲에 기념비가 세워졌는데, 이는 당시까지 어떤 여성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특권이었습니다. 또한 올림피아 제우스 신전에는 마부와 함께 있는 그녀의 동상이 건립되었습니다. 그 동상에 새겨진 비문은 최초의 우승자가 된 자부심을 드러냅니다.
"스파르타의 왕들은 나의 아버지이자 형제들이다.
빠른 말들이 끄는 마차 경주에서 우승한 키니스카가
이 동상을 세웠다. 나는 선언한다. 나는 온 그리스에서
이 월계관을 얻은 유일한 여성이다."
그녀가 연 길, 뒤따른 여성들
키니스카는 당시 유일한 여성이었지만, 그녀의 업적은 다른 여성들에게 길을 열었습니다. 이후에도 티마레타(Timareta)와 테오도타(Theodota) 등 여러 여성이 올림픽 마차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녀들은 덜 알려져 있지만, 스포츠라는 거대한 성벽 속에서 여성들이 힘겹게 차지해낸 자리를 연 개척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