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바라의 왕, '나쁜 찰스'는 누구인가?
나쁜 찰스(Charles le Mauvais, 1332~1387)는 나바라 왕국의 국왕으로, 에브뢰 백작 필리프 드 에브뢰(Philippe d'Évreux)와 나바라 여왕 후아나 2세(Joan II of Navarre)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그는 프랑스 국왕 루이 10세 '말괄량이(Louis X le Hutin)'의 외손자로, 어머니를 통해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할 수 있는 귀한 혈통을 지니고 있었다.
프랑스 왕위를 향한 야망과 음모
찰스는 자신에게 있을지도 모르는 프랑스 왕위 계승권의 회복을 오랫동안 기대하며, 이를 위해 끊임없이 음모를 꾸몄다.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그는 프랑스 국왕 장 2세 '선정왕(Jean II le Bon)'의 딸 잔 드 프랑스(Jeanne de France)와 혼인하기까지 했다.
암살 사건과 영국과의 접촉
1354년, 찰스는 프랑스 대원수 샤를 드 라 세르다(Charles de la Cerda) 암살 사건에 연루되며 프랑스 왕실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되었다. 위기를 느낀 그는 흑태자(the Black Prince)와 접촉해 노르망디에 있는 자신의 영지들을 넘기겠다고 제안하는 등 영국 측에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장 2세는 무력 충돌보다 협상을 선택했고, 그 결과 1354년 망트 조약(Treaty of Mantes)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을 통해 찰스는 여러 자작령과 영토를 추가로 받으며 노르망디 내 자신의 영지를 크게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투옥과 탈출, 그리고 몰락
하지만 찰스의 야망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그는 샤토가야르 성(Château-Gaillard)에 유폐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1357년 놀랍게도 탈출에 성공하며 정치 무대에 복귀했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1364년 코셰렐(Cocherel) 전투에서 프랑스의 명장 베르트랑 뒤 게클랭(Bertrand du Guesclin)에게 패배하면서 그의 세력은 크게 약화되었고, 찰스는 결국 상당 부분의 영지를 포기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