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르맹 티용(Germaine Tillion, 1907~2008)은 프랑스의 민족학자이자 레지스탕스 운동가입니다.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과 알제리 전쟁을 폭넓게 연구하며, 학문과 실천을 아우르는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민족학의 길로
작가 에밀리 쿠사크(Émilie Cussac)와 판사 뤼시앵 티용(Lucien Tillion)의 딸인 제르맹 티용은 1907년 5월 30일 오트루아르(Haute-Loire) 지방의 알레그르(Allègre)에서 태어났습니다. 고향에서 학업을 시작한 뒤 클레르몽페랑의 기숙학교에 들어갔고, 이후 파리 근교로 이주한 부모와 합류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는 아직 열여덟 살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슬픔을 딛고 제르맹은 루브르 박물관 학교(École du Louvre), 소르본 대학, 콜레주 드 프랑스, 그리고 민족학 연구소에서 고등 교육을 이어갔습니다. 1932년 졸업 후에는 논문 준비를 위해 여러 차례 알제리를 찾아 샤우아(Chaouia) 베르베르족을 연구했습니다. 그녀는 특히 사회적 유대 관계, 남녀 관계, 여성의 위상에 깊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특별 식단..."
1940년 6월 휴전 협정 체결 무렵 알제리에서 돌아온 제르맹 티용은 이 사건에 큰 충격을 받았고, 즉시 레지스탕스에 가담했습니다. 포로 탈출 지원, 정보 활동, 도피자 은신, 전단지 작성 등 다양한 활동에 몸담았으며, 네트워크 동료들이 체포되고 처형된 뒤에는 저항 운동의 지휘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배신으로 인해 1942년 8월 13일 체포되어 수개월간 구금되었고, 이 시기 게슈타포에 보낸 풍자와 용기가 담긴 편지를 남겼습니다.
"신사 여러분,
저는 1942년 8월 13일에 체포되었음을 잘 아실 겁니다. 체포 구역에 있었기 때문이죠. 아직도 저를 어떤 혐의로 기소할지 정확히 모르시면서, 제 스스로 죄목을 생각해 내기를 바라셨는지 약 석 달 동안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한 특별 식단을 제공받았습니다. 불행히도 이 식단은 오히려 저를 멍청하게 만들었고, 결국 담당관께서는 자신의 재능에 의존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옥 속의 아무 일도 없는 자>
부인에도 불구하고 제르맹 티용은 1943년 12월 라벤스브뤼크(Ravensbrück) 강제수용소로 추방되었습니다. 저항 운동가였던 어머니 역시 체포되어 1945년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수용소 생활 동안 그녀는 자신과 다른 수용자들이 당하는 만행을 고발할 증거와 문서들을 몰래 수집했으며, 수용 조건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오페레타 <지옥 속의 아무 일도 없는 자>(Le Verfügbar aux Enfers)를 집필했습니다. 1945년 4월 23일, 스웨덴 적십자 호송대 덕분에 수용소를 빠져나와 다른 생존자들과 함께 치료를 위해 스웨덴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 해방된 포로들의 행로, 레지스탕스 동지들, 수용소의 실태, 나치 전쟁 범죄에 대한 연구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알제리 전쟁
1954년 알제리 정세가 급격히 긴장되자 제르맹 티용은 관찰과 분석을 위한 임무로 다시 알제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녀는 지나치게 가혹한 도시화 과정 탓에 악화된 현지의 생활 환경에 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1955년에는 실질적인 문해 교육, 직업 훈련, 보건 사업을 수행하는 사회센터 설립을 주도했습니다. 1957년에는 고문과 학대에 대한 수많은 증언을 수집하고 평화 협상에 매진했으며, 시민사회와 정치 지도자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고문을 규탄하며 사형 선고자들의 사면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레지옹 도뇌르 훈장 대십자장
알제리 전쟁 이후에도 지중해 남안과의 인연을 놓지 않은 제르맹은 대학 교육에 헌신했습니다. 매년 학생들과 함께 아프리카로 장기 과학 탐사를 떠났으며, 이주민과 소수자를 위한 운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알제리 전쟁 중 자행된 고문의 역사적 인정을 위해 싸웠습니다. 이 시기에 민족지, 알제리, 전쟁을 주제로 한 여러 저서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1999년, 제르맹 티용은 레지옹 도뇌르 훈장 최고 등급인 대십자장(Grand-Croix)에 서훈된 여섯 명의 여성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제르맹 티용은 2008년 4월 19일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2015년 5월 프랑스 명예의 전당인 팡테옹(Panthéon)에 상징적으로 안치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