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제노비아, 제국을 정복한 황후

세프티미아 바트자바이, 즉 제노비아(기원후 240~274년)는 팔미라의 여왕으로, 남편의 죽음 이후 제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로마 제국에 맞서 유명한 반란을 이끈 인물입니다.

클레오파트라의 혈통?

제노비아는 시리아의 번영한 무역 도시였던 팔미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로마 시민이었던 그녀의 이름 '제노비아'는 로마식 표기입니다. 로마식 이름이 율리우스 아우렐리우스 제노비우스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팔미라의 총독을 지냈습니다. 제노비아는 자신이 클레오파트라 7세의 혈통이라고 주장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그녀는 이집트와 이집트어에 대해 깊은 지식을 갖춘 인물이었습니다.

당대의 기록에 따르면 제노비아는 아름답고 교양 있으며 지적인 여성이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남자처럼' 행동한다고 알려졌는데, 직접 말을 타고 사냥을 즐기며 부하 장교들과 함께 술잔을 나누었다고 전해집니다. 문학 살롱을 여는 것으로도 유명했던 그녀는 시인과 철학자들을 곁에 두고 학문을 후원했습니다.

이집트의 여왕이 되다

258년 제노비아는 팔미라의 왕 오다이나투스와 결혼하여 아들 바발라투스를 낳았습니다. 267년 오다이나투스가 암살당했을 때 아들은 겨우 한 살이었고, 제노비아는 남편의 뒤를 이어 팔미라를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아우구스타, 즉 로마 황후의 칭호를 받았고, 아들에게는 아우구스투스 칭호를 내렸습니다.

이후 그녀는 제국 확장을 위한 일련의 정복 전쟁에 나서 시리아, 이집트, 소아시아를 차례로 정복했습니다. 스스로 이집트의 여왕을 자칭한 그녀는 '싸우는 여왕'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군대와 함께 말을 타고, 때로는 수 마일을 걸어 행군하는 등 진영을 직접 이끌었습니다.

로마 제국과의 대결, 그리고 몰락

당시 진짜 로마 황제였던 아우렐리아누스는 갈리아에서 원정 중이었습니다. 그는 제노비아의 세력이 미칠 영향력을 인식하고, 그녀가 아들 바발라투스와 함께 제안한 동맹을 거부했습니다. 272~273년 아우렐리아누스는 로마 제국 통일을 위한 대대적인 원정을 개시하여 소아시아에서 제노비아의 군대를 상대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마침내 아우렐리아누스는 여왕이 남은 병력과 함께 피신해 있던 시리아의 에메사를 포위했습니다.

제노비아는 결국 포로로 잡혔고, 항복을 거부한 그녀의 지지자들은 처형되었습니다. 아우렐리아누스는 제노비아와 바발라투스를 로마로 압송했는데, 어린 아이는 아마도 도중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복 여왕의 최후에 대해서는 로마로 추방되었다는 설과 로마인과 재혼하여 말년을 보냈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