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위타무: 필립 왕 전쟁에 나선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추장

위타무(Weetamoo)는 위타모(Weetamoe), 나멈품(Namumpum), 타타파눔(Tatapanunum)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 인물로, 1635년에서 1640년 사이에 태어나 1676년에 생을 마감한 포캐셋 와파노아그(Pocasset Wampanoag) 출신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입니다.

족장의 딸로 태어나다

위타무: 필립 왕 전쟁에 나선 아메리카 원주민 여성 추장위타무는 포캐셋 부족의 족장 코르비탄트(Corbitant)와 그의 아내 중 한 명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오늘날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에게는 우토네카누스케(Wootonekanuske)라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장녀인 위타무는 자연스럽게 포캐셋 부족 족장 자리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위타무는 포캐셋 부족의 중심 마을이었던 메타포이셋(Mettapoisett, 현재 매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 지역)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녀는 사냥, 낚시, 수영, 요리, 무두질은 물론 외교술까지 폭넓게 익혔습니다. 장차 족장이 될 운명을 지닌 위타무는 1654년, 원래 남자아이들만 치르던 성인식인 '비전 퀘스트(vision quest)'를 수행했습니다. 이 의례를 거치는 청소년은 홀로 숲속으로 들어가 며칠간 금식하며 근원적인 영적 에너지와 교감하고, 어린아이의 영혼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고독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왐수타와의 결혼

비전 퀘스트를 마친 몇 년 뒤, 위타무는 와파노아그 부족 연합의 대족장 마사소이트(Massasoit)의 장남 왐수타(Wamsutta)와 결혼했습니다. 포캐셋 부족은 이 와파노아그 연합에 속해 있었습니다. 마사소이트는 플리머스 식민지와 체결한 조약으로 공식화된 평화 속에서 이주민들과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의 선교사들은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사업을 벌였고, 개종자들은 기존 문화와 단절된 채 서구 문화를 강요받는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야 했습니다.

1661년 마사소이트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왐수타가 와파노아그 부족 연합의 새 족장이 되었습니다. 충성의 표시로 왐수타는 '알렉산더', 동생 메타코멧(Metacomet)은 '필립'이라는 영국식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영국 이주민들은 왐수타를 달가워하지 않았고, 그는 플리머스 식민지에 초대되었다가 갑자기 병을 얻어 사망했습니다. 독살 가능성이 제기된 죽음이었습니다. 이주민들과 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의 일부 관습을 받아들이기도 했던 위타무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이주민들에 대한 깊은 증오를 품게 되었습니다.

필립 왕 전쟁

왐수타의 뒤를 이어 동생 메타코멧(필립)이 족장이 되면서 와파노아그와 이주민들의 관계는 급격히 악화되었습니다. 1671년 영국인들은 족장에게 복속 조약을 강요해 전사들이 무기를 내놓을 것과 부족이 잉글랜드 왕실에 복종할 것을 명문화했습니다. 영국인들이 여기서 만족하지 않으리라 판단한 메타코멧은 다른 부족들과 동맹을 맺고 무기와 탄약 조달에 착수하며 1676년 반란을 계획했습니다. 그러나 1675년, 기독교로 개종한 원주민 한 명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세 명의 와파노아그 전사가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처형된 것입니다. 격앙된 분위기 속에 메타코멧은 더 이상 부족 전사들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결국 1675년 6월 24일 첫 습격이 시작되었고, '필립 왕 전쟁(King Philip's War)'이 발발했습니다.

그 사이 위타무는 페토노워웨트(Petonowowett)라는 남성과 재혼했지만, 남편이 영국 편에 섰다는 이유로 그를 떠나 메타코멧의 반란에 합류했습니다. 그녀는 무려 300명의 병력 지휘권을 얻어 직접 이주민 정착촌에 대한 공격을 이끌었습니다. 이후 1년간 와파노아그 부족과 동맹 세력은 잉글랜드 식민지의 절반 이상을 공격하고 열두 개의 마을을 불태웠습니다. 그러나 1676년 8월 6일 영국군의 매복 공격으로 전세가 기울었고, 6일 뒤 메타코멧은 부하의 배신으로 살해당했습니다. 이주민들은 인디언 지도자들을 가차 없이 추적해 항복한 사람조차 붙잡히는 대로 처형했습니다.

다른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추격당하던 위타무는 도피 중 타운턴 강(Taunton River)을 건너다 발을 헛디뎌 익사했습니다. 발견된 그녀의 시신은 공개적으로 전시되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위타무는 오늘날 '스쿼 사첨(squaw sachem)', 즉 여성 족장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