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로마 제국에 맞서 연전연승한 아랍 여전사 마비아

마비아(Mavia)는 마위아(Mawia), 마와이(Mawai), 마니아(Mania) 등으로도 불리는 아랍의 여전사 왕으로, 4세기 후반 시리아 남부를 다스렸습니다. 그녀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로마 제국에 대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 수많은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젠로비아의 반란과 자주 비교되는 봉기

로마 제국에 맞서 연전연승한 아랍 여전사 마비아

마비아의 활약은 주로 아퀼레이아의 루피누스(Rufinus of Aquileia)와 같은 동시대 혹은 그에 가까운 시기의 저술가들이 남긴 기록을 통해 전해집니다. 다만 이 기록들은 그녀의 유년기나 청년기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아랍 부족 출신의 후손인 그녀는 시리아 남부의 준유목 타누키드(Tanukhid) 부족 연합의 마지막 왕인 알하와리(al-Hawari)와 결혼했습니다. 375년 남편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마비아가 부족 연합의 실권을 장악했습니다. 이후 그녀는 아마도 종교적인 이유 때문인 것으로 추정되며, 빠르게 아랍권 내부에서 동맹을 맺으며 로마 제국에 대한 봉기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378년, 마비아는 로마에 대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고, 이 봉기는 한 세기 전 젠로비아(Zenobia)의 반란과 자주 비교됩니다. 그녀는 직접 병사들을 전장에 이끌고 나가 아라비아와 팔레스타인, 나아가 이집트 국경에 이르기까지 로마군을 연달아 격파했습니다. 기동성이 뛰어난 그녀의 부대는 게릴라 전술을 구사해 기습 작전을 감행함으로써 적이 보복할 표적조차 잡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전장에서는 이미 익숙하게 터득한 로마식 전략을 역으로 활용했습니다. 뛰어난 전술가였던 마비아는 팔레스타인의 로마 총독을 굴복시키고 지역 곳곳에서 지지 세력을 규합하며 거침없이 진격했습니다.

수많은 승리 끝에 체결된 평화

여러 차례 패배를 거듭한 로마 황제 발렌스(Valens)는 이미 고트족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기에 평화 협상에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대 기록에 따르면, 반란 기간 중 마비아는 한 은둔 수도사를 만난 뒤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녀는 평화의 조건으로 이 수도사를 자신의 백성들의 주교로 임명할 것을 요구했고, 이 요구는 받아들여졌습니다. 기독교 고대사 학자인 소크라테스 스콜라스티쿠스(Socrates Scholasticus)는 또한 강화를 공고히 하기 위해 마비아가 딸 카시다트(Chasidat)를 로마군 총사령관에게 시집보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휴전 조건에는 타누키드 부대가 고트족과의 전쟁에서 로마를 지원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마비아는 이를 성실히 이행했습니다. 그러나 낯선 전장에서 그녀의 군대는 예전만 못한 위력을 발휘했고, 고트족은 로마군을 콘스탄티노플까지 몰아붙이며 격전 끝에 황제 발렌스를 전사시킵니다.

그러나 동맹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Theodosius I)가 아랍인들을 배제하고 고트족을 우대하면서, 아랍인들은 배신당했다고 느꼈습니다. 383년에 일어난 새로운 반란은 신속하게 진압되었지만, 당시 기록에는 이 두 번째 봉기를 마비아가 직접 이끌었는지 여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마비아는 425년 아나사르타(Anasartha, 현재 시리아의 카나시르) 마을에서 생을 마감했으며, 그곳에는 그녀의 죽음을 기록한 비문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