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하트셉수트, 이집트를 다스린 '왕 파라오'

하트셉수트(기원전 1508년~1495년경 출생 – 기원전 1457년 몽고)는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에 속한 '여왕 파라오'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아들과 함께 왕으로서 약 20년간 이집트를 통치했습니다.

왕가의 공주

훗날 파라오가 되는 투트모세 1세와 그의 대왕비이자 자매인 아흐메스 사이에서 태어난 하트셉수트는 기원전 1508년~1495년경 테베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그녀의 섬세한 얼굴을 보고 지어준 이름은 '고귀한 귀부인들의 우두머리'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녀는 유모의 손에서 자랐으며, 아버지는 첩실 무트노프레트 1세 사이에서 세 아들을 두었고, 부부에게는 네페루비티라는 둘째 딸도 있었지만 어린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하트셉수트가 여덟아홉 살 무렵, 파라오 아멘호텝 1세가 후계자 없이 서거하자 아버지 투트모세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트셉수트는 왕가의 공주가 되었고, 이 칭호에 걸맞은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총명했던 그녀는 아버지의 각별한 관심 속에서 미래의 중요한 역할을 준비했는데, 아버지는 그녀를 직접 여행에 동반시키고 고위 관료들에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데르 엘바하리 신전의 벽면에는 "내 자리에 그녀를 앉히리라"는 아버지의 말이 새겨져 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첩실에게서 난 형제들이 모두 허약했던 점도 파라오가 하트셉수트에게 특별한 기대를 걸게 만든 배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상·하 이집트의 왕, 마아트카레

아버지 재위 7년경, 하트셉수트는 이복동생 투트모세와 결혼했습니다. 이 결혼은 훗날 투트모세 2세의 왕위 계승을 확보하는 동시에, 하트셉수트를 대왕비의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3~4년 후 두 사람 사이에는 딸 네페루레가 태어나 가정교사의 손에서 길러졌습니다. 투트모세 2세는 12년 남짓 통치한 뒤 서거했고, 그의 후계자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 통치는 불과 3년으로 끝났으며, 그동안 하트셉수트는 둘째 딸 메리트레하트셉수트를 낳았습니다. 후계자인 투트모세 3세는 투트모세의 또 다른 아들로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하트셉수트는 왕국의 섭정이 되었습니다.
테베의 총독 이네니의 무덤 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누이이자 신의 아내인 하트셉수트는 나라의 일을 오로지 자신의 뜻대로 처리하였다. 두 땅(상·하 이집트)은 그녀의 의지에 복종하며 그녀를 섬겼다.'

하트셉수트는 '마아트카레, 상·하 이집트의 왕'이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젊은 왕은 '사레'(태양의 아들)로 불렸습니다. 투트모세 3세 재위 3년경,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즉위식은 전통 의식을 따르지 않았으나 아몬 신전 성직자단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즉위 이후 그녀는 공식 의식에서 남성적 왕권의 상징인 로인클로스, 머리 장식, 인공 수염을 착용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투트모세 3세와 연호를 함께 사용하며 그를 왕으로서 부정하지 않았고, 왕좌는 두 군주가 함께 나누어 가졌습니다.

건축으로 빛낸 평화로운 재위

하트셉수트는 기원전 1479년부터 1457년까지 약 22년간 통치했습니다. 그녀의 재위는 대체로 평화로웠으며, 상아 · 흑단 · 삼나무 목재 · 유류 · 향료 · 구리 · 터키석 등을 거래하는 무역의 큰 성장기였습니다. 그녀는 무역로를 개척하고 광산을 개발하며 각종 탐사 원정에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누비아에 대한 군사 원정을 통해 부왕(副王)을 교체했고, 팔레스타인에도 원정을 보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위대한 건축가이기도 했던 그녀는 수많은 건축 사업과 오벨리스크, 기념물, 예배당의 축조를 주도했으며, 방대한 조각상을 제작하고 오래된 신전들을 복원하는 일도 펼쳤습니다.

하트셉수트는 재위 22년 차, 50세 전후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짧은 재위 기간에 착공된 대왕비용 무덤이 아니라 파라오의 무덤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러나 투트모세 3세의 재위 말기에 들어서면서 문서와 기념물에서 하트셉수트의 이름을 지우려는 시도가 벌어졌고, 그녀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들은 파손되었습니다. 이러한 기록 말살은 그녀를 왕이 아닌 단순한 섭정의 지위로 되돌리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