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로라 바시(Laura Bassi):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대학 교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이탈리아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로라 마리아 카타리나 바시(Laura Maria Catarina Bassi, 1711~1778)는 대학 교수직을 얻은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입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 뉴턴 사상을 널리 보급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뛰어난 재능을 보인 학생

로라 바시(Laura Bassi): 이탈리아 최초의 여성 대학 교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

로라 바시는 1711년 10월 말(29일에서 31일 사이로 추정) 이탈리아 볼로냐의 유력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변호사였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배우며 남다른 지능으로 두각을 나타낸 그녀는, 학업 소질을 알아본 아버지의 결정으로 이미 700년 역사를 자랑하던 볼로냐 대학교에서 의학을 가르치던 가에타노 타코니(Gaetano Tacconi)에게 교육을 받게 됩니다.

로라는 그에게서 7년간 배웠으며, 훗날 뉴턴 이론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두 사람은 점차 멀어지게 됩니다. 이후에는 사촌인 로렌초 스테가니(Lorenzo Stegani)에게서 언어, 자연사, 기하학, 철학, 산술을 이어 배웠습니다. 학업 기간 동안 그녀의 예리한 지성은 대학의 교수와 학생들뿐 아니라 과학에 깊은 조예를 지닌 프로스페로 람베르티니(Prospero Lambertini) 추기경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1740년 베네딕토 14세(Benedict XIV)로 즉위하며, 로라의 성장 과정을 늘 큰 관심으로 지켜보았습니다.

철학 박사 학위 취득

1732년, 로라 바시는 논문을 방어하고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물리학과 수학 강독자(reader)로 임명되어 해부학도 함께 가르쳤습니다. 당시 여성은 대학에서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이탈리아 대학들—특히 볼로냐 대학교—은 같은 시기 프랑스 대학들보다 훨씬 개방적이었습니다. 13세기에는 최초로 대학 교수로 임용된 여성으로 평가받는 베티시아 고차디니(Bettisia Gozzadini)가 법학을 강의했고, 14세기에는 알레산드라 질리아니(Alessandra Giliani)가 의학을 공부했으며, 1390년부터는 도로테아 부카(Dorotea Bucca)가 의학과 철학 교수직을 40년간 맡았습니다.

로라는 단순히 대학에 들어가는 데 그치지 않고 든든한 지원과 명예를 누렸습니다. 그녀의 강의는 유명세를 타 전 유럽에서 학생들이 몰려들었고, 훗날 위대한 물리학자가 되는 알레산드로 볼타(Alessandro Volta)도 그녀에게 배웠습니다. 강의실을 넘어 그녀의 명성은 국경을 넘어섰습니다. 뉴턴 저작의 번역자인 수학자 에밀리 뒤 샤틀레(Émilie du Châtelet)는 그녀를 깊이 존경했으며, 볼테르(Voltaire)와도 서신을 주고받았습니다.

1738년 로라는 볼로냐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의학을 가르치던 주세페 베라티(Giuseppe Veratti)와 결혼했습니다. 자녀 수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견해가 갈립니다(여섯 명이라는 설과, 열두 명 중 다섯 명만 성인까지 살아남았다는 설). 그러나 어떤 기록을 따르든, 새로운 가정 생활은 로라가 연구와 강의를 계속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했습니다.

학문적 경력

늘 뉴턴 사상에 관심을 기울인 로라 바시는 이를 가르치고 관련 글을 집필하며 이탈리아에서의 확산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단행본을 직접 내지는 않았지만, 볼로냐 과학 아카데미에 물리학, 수학, 역학, 화학 분야의 수많은 논문과 글을 꾸준히 제출했습니다.

1745년, 과학과 로라의 업적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25명의 학자로 구성된 '베네딕티니(Benedettini)'라는 학자 그룹을 창설합니다. 일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는 로라의 가입을 성사시켰고, 로라는 해당 그룹의 유일한 여성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난 후 한동안 공석이었던 자리는 또 다른 여성 학자인 마리아 달레 도네(Maria Dalle Donne) 박사에게 돌아갔습니다.

1772년 볼로냐 대학교 실험물리학 교수 파올로 발비(Paolo Balbi)가 서거하자, 로라가 후임으로 임명되어 실험물리학 교수직을 수여받았고, 남편이 조수로 그 곁을 함께했습니다.

로라 바시는 1778년, 연구와 교육 양면에서 풍요롭고 결실 많은 과학 경력을 쌓은 뒤 6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앞선 여성 선구자들과 더불어, 여성에게 여전히 폐쇄적이었던 대학 환경 안에서 여성의 학문적 입지를 정당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