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 베네치아의 화가 마리에타 로부스티(Marietta Robusti, 1560?~1590)는 아버지 틴토레토의 이름을 딴 '틴토레타(Tintoretta)'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뛰어난 재능이 담긴 초상화들을 남긴 인물입니다.
틴토레토의 딸

마리에타 로부스티의 생애를 다룬 두 가지 주요 사료는 그녀의 출생 연도에 대해 서로 다른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화가이자 작가인 카를로 리돌피(Carlo Ridolfi)의 『야코포 로부스티의 생애(Vita di Jacopo Robusti)』에 따르면 그녀는 1560년생이지만, 라파엘로 보르기니(Raffaelo Borghini)의 『회화와 조각의 휴식(Il Riposo della Pittura e della Scultura)』에서는 1555년경 출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해가 무엇이든 그녀는 당시 '세레니시마 공화국', 즉 베네치아 공화국(Serenissima Repubblica di Venezia)의 수도였던 베네치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마리에타 로부스티는 유명한 화가 야코포 로부스티(Jacopo Robusti), 즉 '틴토레토(Tintoretto)'로 더 잘 알려진 인물과 파우스티나 에피스코피(Faustina Episcopi)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입니다. '틴토레토'라는 별명은 "작은 염색공"이라는 뜻으로, 세탁소에서 일하던 그의 아버지 바티스타 로부스티(Battista Robusti)에게서 유래한 것이며, 동시에 훗날 화가가 될 그가 처음으로 안료와 색을 접하게 된 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마리에타는 이 별명을 물려받게 되며, 부모는 이후에도 딸 넷과 아들 셋, 모두 일곱 자녀를 더 두었습니다.
실력을 인정받은 예술가
틴토레토는 장녀를 무척 아꼈습니다. 어린 시절 마리에타는 아버지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다닐 수 있도록 때때로 소년 옷차림을 하고 다니기도 했다고 전해집니다. 총명한 두뇌와 뛰어난 시각적 기억력을 지닌 그녀는 드로잉과 노래, 음악을 배웠으며 하프시코드와 류트 연주도 익혔습니다.
무엇보다 여성에게 문호가 꽉 닫혀 있던 당시 미술계에서 마리에타는 아버지의 작업실에 들어갈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 밑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며 드로잉과 회화 기법을 함께 익혔고, 특히 배경 작업 등을 맡으며 아버지의 그림 제작에 기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단화 제작 과정에서도 아버지를 도왔지만, 그녀의 공로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확고한 예술가로 성장한 마리에타는 자신만의 작품에서 특히 초상화 장르에 몰두했습니다. 그녀는 마르코 데 비스코비(Marc dei Vescovi)와 그의 아들 피에트로의 초상화를 그렸으며,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고물상이었던 야콥 스트라다(Jacob Strada) 역시 마리에타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해 황제에게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예술적 재능은 널리 알려져 인정받았고, 막시밀리안 2세와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는 그녀를 궁정 화가로 맞이하고 싶다는 뜻을 직접 밝혔습니다. 그러나 틴토레토는 딸이 자신 곁을 떠나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이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너무 이른 죽음
1578년, 틴토레토는 딸이 자신 근처에 머물 수 있도록 베네치아의 보석상 야코포 아우구타(Jacopo Auguta)와의 혼사를 주선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에타 로부스티, 즉 '라 틴토레타'는 1590년 출산 중에 요절했으며, 향년 서른 살 또는 서른여섯 살이었습니다.
카를로 리돌피는 그녀에 대해 "감수성이 담긴 여성스러움과 굳건한 여성적 우아함"을 지닌 채 아버지에 필적하는 재능을 갖춘, 당대 가장 빛나는 여성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