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혁명의 위대한 여인, '탄당 소라' 멜코라 아키노

'탄당 소라(Tandang Sora)' 또는 '늙은 소라'로도 알려진 필리핀 혁명가 멜코라 아키노 데 라모스(Melchora Aquino de Ramos, 1812~1919)는 필리핀 혁명 발발 당시 혁명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스페인령 필리핀

혁명의 위대한 여인,  탄당 소라  멜코라 아키노

필리핀 혁명 이전 멜코라 아키노의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1812년 루손 섬의 마닐라 근교에서 평범한 가정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무려 3세기 가까이 스페인 왕실의 지배를 받아온 필리핀에서 성장하고 살았습니다. 다만 스페인의 지배는 사실상 원격 통치에 가까웠는데, 필리핀을 담당하는 부왕이 멕시코에 거주했기 때문입니다. 현지에서는 막강한 권력을 지닌 가톨릭 교회가 사법과 세금 분야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했습니다. 현지 주민들이 겪은 차별은 때때로 반란으로 폭발했으며, 1762년 가브리엘라 실랑(Gabriela Silang)과 그녀의 남편이 일으킨 반란이 실패로 끝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19세기 초, 스페인 식민 제국은 남미의 식민지들을 잇달아 상실하며 서서히 해체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만회하고자 스페인은 남은 식민지들의 경제적 가치를 키우는 데 주력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수출용 담배와 사탕수수 재배가 크게 발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부유한 대지주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엘리트 계층이 등장했고, 이들은 이내 스페인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욕구를 드러냈습니다. 한편 토지가 소수의 부유층에 집중되면서 소농들이 경지를 확보하기는 더욱 어려워졌고, 사회적 불평등은 깊어갔습니다. 이에 따라 반란 역시 점점 빈번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널리 퍼진 불만과 독립에 대한 열망은 조직의 형태로 결집되었습니다. 선전운동(Propaganda Movement)과 카티푸난(Katipunan) 같은 독립운동 단체가 탄생하며 전면 봉기를 준비했습니다. 혁명 직전, 필리핀 식민 사회의 심각한 불평등에 시달리던 주로 노동 계층 출신 3만 명이 봉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페인 식민 당국이 이 계획을 사전에 파악하면서, 봉기는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 채 1896년 8월에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시대의 흐름은 스페인에게 더욱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스페인은 이미 전 해 발발한 쿠바 독립전쟁으로 두 개의 전선을 상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탄당 소라

필리핀 혁명이 일어났을 때 멜코라 아키노의 나이는 84세였습니다. 이미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삶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습니다. 여섯 자녀를 둔 어머니였던 그녀는 막내가 겨우 일곱 살이던 해에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었고, 생계를 꾸리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가게를 차렸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받지 못한 교육이라도 자녀들에게 꼭 주고 싶다는 일념으로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했던 그녀는 의식이나 지역 행사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도 이름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탄당 소라', 즉 "늙은 소라"는 혁명과 혁명가들을 지지했습니다. 봉기가 시작된 초창기부터 그녀는 자신의 가게를 부상자와 환자가 된 혁명가들의 은신처이자 요양처로 바꾸었습니다. 그녀는 그들을 돌보고 먹일 것을 나누어 주며 기도로 격려해 주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멜코라는 자신의 집에서 카티푸난 회원들의 회의를 주최해 그들이 앞으로의 행동을 계획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러한 목숨을 건 위험 감수와 헌신 덕분에 그녀는 "혁명의 위대한 여인", "필리핀 혁명의 어머니"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스페인 당국은 끝내 탄당 소라의 비밀 활동을 적발했고, 그녀를 좋은 기회로 여겼습니다. 늙은 여인이 혁명가들의 동향과 작전 계획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체포되어 심문을 받는 동안에도 멜코라는 혁명에 대한 충성심을 굽히지 않았고, 어떤 정보도 흘리기를 거부했습니다. 결국 그녀는 스페인령이었던 서태평양의 섬 괌으로 추방되었습니다.

필리핀에서 전쟁은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혁명가들은 1897년 패배를 겪었지만, 쿠바 독립전쟁으로 고전하던 스페인 역시 수적 열세 속에 상황이 녹록지 않았습니다. 결국 1897년 휴전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1898년, 멜코라는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1919년 107세의 나이로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필리핀의 독립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같은 해 스페인과 미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의 결과로 필리핀은 미국에 할양되었습니다. 특히 처절했던 이 전쟁은 1902년 미국의 승리로 끝났고, 필리핀이 진정한 독립을 쟁취한 것은 1946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