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리 캐슬린 러스턴(Audrey Kathleen Ruston), 예명 오드리 햅번(1929~1993)은 영국 출신의 배우이자 영화사에 길이 남을 아이콘이다. 겨우 열한 살에 레지스탕스 활동에 나섰던 그녀는 훗날 유니세프 친선대사로서 세계 곳곳에 희망을 전했다.
열한 살의 저항운동가
남작부인 엘라 반 헴스트라(Ella van Heemstra)와 조지프 빅터 앤서니 러스턴(Joseph Victor Anthony Ruston) 사이에서 태어난 오드리는 1929년 5월 4일 벨기에 익셀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이전 결혼 생활에서 얻은 두 아들이 있었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오드리는 5세 무렵부터 클래식 발레를 시작했고, 이는 그녀 평생의 열정이 되었다.
1935년, 잦은 부부 갈등 끝에 아버지는 말없이 집을 떠났고, 오드리는 영국의 기숙학교로 보내져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1939년 전쟁이 발발하자 반 헴스트라 남작부인은 폭격으로부터 딸을 지키기 위해 그녀를 네덜란드로 데려왔다. 오드리는 영국 출신이라는 사실이 들통나지 않도록 이름을 '에다(Edda)'로 바꾸며 지냈다.
전쟁 중 오드리는 아른험 음악원에서 클래식 발레를 배우며 공연에 몸담았다. 독서를 즐겼고 영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에 능통한 재능을 보였다. 11세부터 저항운동에 참여해 처음에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이후에는 공연을 통해 자금을 모금하는 일을 했다. 극심한 영양실조로 발레 수업을 중단할 정도로 고된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배우 경력의 시작
전쟁이 끝난 후 오드리는 아버지의 선조로 추정되는 성씨 '햅번(Hepburn)'을 예명으로 택했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런던으로 이주해 발레 수업을 이어가며 모델로도 활동했지만, 전쟁으로 상처받은 몸 때문에 안타깝게도 무용의 꿈을 접어야 했다. 1948년 영화 <네덜란드인의 일곱 가지 교훈>에서 첫 단역을 맡은 뒤, 다수의 조연과 광고 출연으로 경력을 쌓아갔다.
소설가 코레트(Colette)의 주목을 받은 오드리는 그녀의 연극 <지지(Gigi)>의 주연을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맡게 되었다. 1953년에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첫 주연을 맡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일약 스타로 도약했다. 이후 1968년까지 당대 최고의 감독과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전쟁과 평화>, <멋진 인생>, <그린 맨션>, <샤라데>, <마이 페어 레이디> 등에 출연했고, 특히 <티파니에서 아침을> 속 홀리 골라잇리 역은 영화사상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
1954년 9월 25일, 오드리 햅번은 배우이자 감독, 프로듀서인 멜 페러(Mel Ferrer)와 결혼해 여러 작품에서 함께했으며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부부 관계의 어려움 끝에 1968년 11월 20일 이혼했다. 같은 해 그녀는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지만, 이후에도 몇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1969년 1월에는 정신과 의사 안드레아 도티(Andrea Dotti)와 재혼해 또 아들을 얻었으나 1982년 이혼했고, 이후 네덜란드 배우 로버트 울더스(Robert Wolders)와 마지막 연인으로서의 삶을 함께했다.
오드리는 전쟁 시절 자신을 도왔던 구호 활동에 대한 보답으로 유니세프에 헌신했고, 1988년 친선대사로 임명되었다. 그녀는 1992년까지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등 위기 지역을 누비며 아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1993년 1월 20일, 오드리 햅번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2년 유니세프는 본부에 그녀를 기리는 동상을 세워 그 공헌을 기렸다. 그녀는 오늘날까지 우아함과 인도주의 정신을 함께 상징하는 진정한 영화계의 아이콘으로 기억되고 있다.